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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대사위주로 써 본 ss입니당



1.

호노카: 아- 심심하다.

노조미: 굉장히 한산하데이.

호노카: 빵을 5개나 먹었는데, 10분 밖에 지나지 않았고... 시간은 어떻게 떼우면 좋은 걸까.

린: 호노카가 먹는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닐까냐.

호노카: 우우- 어쨌든 심심하다구. 

노조미: 왜인지 오늘은 다들 바쁘고, 그래서 연습시간은 미뤄졌고-.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 우리 셋만 한가하니깐 말이제.

린: 이렇게 셋이 있는 건 처음인 거 같다냐.

호노카: 오옷, 그러네. 

노조미: 의외로 신선한 조합~.

호노카: 우리 셋이서 뭘 하면 재밌다고 소문이 날까!

린: 으음..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냐-.

노조미: 그냥 수다 떨고 있는 것도 즐겁지만 말이제.

호노카: 그건 그렇지만. 뭔가 신나는 일이 일어났음...

허엇! 저기 마키가 걸어온다!


린: 교무실에 볼 일이 있다고 했는데, 일찍 끝났나 보다냐-.

노조미: 마키는 늘 진지해 보인데이. 그냥 걷고 있을 뿐인데도 요조숙녀의 분위기가 물씬~♬

호노카: 그러고보니, 마키가 당황하거나 곤란해하는 건 그다지 본 적이 없을지도..

린: 쿨하고 냉정한 이미지다냐. 

노조미: 마키의 다른 표정도 궁금할지도~.

호노카: 역시 그렇지? 


노조미: (방긋)

호노카: (씨익)

린: (생글)


노조미: 정했데이!

호노카: 그거구나, 그거.

린: 재밌겠다냐~.


[세 명, 동시에 일어나 일사분란하게 흩어진다.]


2.

마키: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호노카랑 린, 노조미는 기다리고 있으려나.. 빨리 가야겠다.

린: 이얍!

마키: 까, 깜짝이야. 언제부터 있었어, 린?

린: 나는 린이 아니다냐-!

마키: 어딜 봐도 린이잖아. 말투부터.

린: 흠흠, 나는 린이 아니다냐-. 대마왕의 오른팔인 린이다냐!

마키: 어쨌든 린이잖아!

린: 세세하게 파고들지 말라냐. 원래 초기 설정은 구멍이 하나 둘 정도는 있는 법이다냐.

마키: 뭐야, 어디의 게임이냐고.. 그래서. 뭘 하고 싶은 건데?

린: 마키, 옥상으로 가고 싶은 거냐?

마키: 물론이지. 연습시간에 맞춰서 가야하니까. 그보다 너 말투 이상해졌어..

린: 그러냐? 그럼 나를 쓰러뜨리고 가라냐-!

마키: 흥, 뭐라는 건지.. 장난에 어울려 주길 원한다면 사람 잘못 골랐어. 

린: 아니 맞게 골랐다냐. 우린 마키한테 장난을 치고 싶었다냐.

마키: '우리'라니.. 설마 셋이서 합세해서..

린: 앗 엄청 약하면서 같은 편에 대한 정보나 줄줄 읊는 악당 엑스트라 1처럼 너무 떠들었다냐. 더이상 지체하지 않겠다냐- 자, 덤벼라, 마키!

마키: 싫어. 

린: 에- 어째서-?!

마키: 그냥 지나갈래.

린: 안된다냐! 날 쓰러뜨리지 않으면 지나가지 못한다냐!

마키: 지나갈 거야- 앗.

린: 에잇.


[린이 길을 막고 있다. 지나갈 수 없다.]


마키: RPG 게임이냐고! 이상한 텍스트가 나오잖아.

린: 마키.. 훌륭한 태클이다냐. 

마키: 으윽, 시끄러... 빨리 비켜줘. 재미 없으니까.

린: 난 재밌다냐.

마키: 정말이지.

린: 그럼 게임의 룰을 설명하지! 3분 안에 린의 몸을 터치하면 지나갈 수 있게 해주겠다냐!

마키: 흥. 간단하지. 이렇게 좁은 복도에서는 금방.. 어라?

린: 후훗.

마키: 재빨라..

린: 대마왕의 왼팔이자 운동계인 이 린을 붙잡을 수 있을까보냐!

마키: 팔 위치가 바뀌지 않았어?

린: 세세한 건 신경쓰지 말라냐.

마키: .....


[거듭 시도하지만 여의치 않다. 린이 워낙 재빠르다.]


마키: (이래선 끝도 없겠는 걸.. 다른 방도를 생각해야겠네.)

린: 하하, 마키. 골몰한 얼굴이 귀엽다냐-.

마키: 별로. 무슨 소리야? 

(갑자기 하늘을 가리키며) 어, 어라? 창 밖에 하늘을 나는 라면이?!

린: 뭐엇?!

마키: 터치.

린: 아악- 당했다냐!

마키: 역시 단순하네, 린은 역시.

린: '역시'를 두 번이나 말하지 말아달라냐..

마키: 뭐어. 어쨌든 지나가게 해주는 거지.

린: 룰은 룰이니까.. 자아, 올라가라냐.

마키: 후우. 겨우 올라가게 되었네.



3.

노조미: 방심은 금물이래이-!

마키: 히이익! 깜짝이야..

노조미: 방금 전에 마키, '히이익'하고 놀라지 않았나. (방긋) 귀엽데이~.

마키: 벼, 별로 놀라지 않았거든. 

노조미: 후훗~♪

마키: 뭐가 즐거운 거야..

노조미: 내는 대마왕의 오른팔, 노조미데이! 오랜만에 도전자를 만나니 반갑구마...크큭,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으면 날 쓰러뜨리고 가야한데이!

마키: .... 대마왕은 대체 팔이 몇 개인 거야?

노조미: 대마왕이니 여러 개일 수도 있데이.

마키: 징그러.. 그나저나, 순순히 보내 줄 생각은 없나보네.

노조미: 물론~.

마키: 으, 귀찮아졌네.

노조미: ♪

마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노조미도 갑자기 뛰기 시작하는 거야?

노조미: 아쉽게도 내는 운동계가 아니라서, 그런 건 자신 없구마.

마키: 그러면..

노조미: 으음, 굉장히 쉬운 미션이래이.

마키: 갑자기 미션이 생겼네.

노조미: -'노조미 언니, 좋아해요!'라고 외치며 내 품에 안기면 위로 보내주겠데이.

마키: 뭐야 그게-!

노조미: 무지 간단하잖나♡

마키: 바보 같아. 그런 거 할 거 같아..

노조미: 안하면 절대로 보내주지 않을 거구마. 영원히 이 층에서 나와 함께 살아야 한데이! 

마키: 이상해. 이거 세계관 너무 이상해-노조미 캐릭터도 이상해!

노조미: 그런 건 중요치 않데이. 중요한 건, 연습시간에 맞춰 옥상에 가야되는 거 아니긋나?

마키: .....으으.

노조미: 풀 죽은 얼굴도 귀엽네♬

마키: 노조미, 뭔가 신이 나보이는데... 나는 기분이 다운되는 걸.

노조미: 자아, 빨리 내 품에 안기래이!

마키: .......윽. 


[마키, 머뭇머뭇]

노조미: ♡

마키: 노..노조미..

노조미: ♡

마키: 노조미...언..니....

노조미: 후훗.

마키: 어, 언니... 


[마키, 살포시 노조미의 품에 안긴다.]


마키: (뭔가..굉장히 푹신한 걸.)

노조미: (마키, 얼굴이 붉어져서-귀여워♡)


마키: 어, 어쨌든 이제 된 거지?

노조미: 아니. 10초만 더 이렇게...

마키: 우으...


린: 휘익-♪

마키: 뭐야! 언제부터 있었어?!

린: 마키가 '히이익'하고 귀여운 얼굴로 소스라치게 놀랄 때부터, '노조미..언니..'하고 수줍게 노조미의 품에 안길 때까지 있었다냐.

마키: 줄곧이잖아-! 

린: 마키, 귀엽다냐.

노조미: 그치?

마키: 흐, 흥. 10초 지났으니 이제 됐지? 난 올라갈래.

린: 조심하라냐!

마키: 깜짝이야.. 계단에 뭐라도 있어?

린: 아니. 윗층을 조심하라냐. 위에서 기다리는 마지막 적은 가장 강력하다냐.

마키: 그런 얘기였냐고. 상관없어. 이쯤 되면 위에 있는 게 누구인지도- 충분히 알겠거든.


4.

마키: 역시..

호노카: 후후후후후!

마키: 까만 망토는 어디서 난 거야.. 중2병 같아..

호노카: 후후후후! 나는 오토노키자카 본관 3층을 지배하는 대마왕! 호노카다--!!!

마키: 굉장히 조그만 영역을 지배하는 마왕이네.

호노카: 대마왕이야.

마키: 그래, 알았어..

호노카: 듣자하니 마키, 내 부하를 쓰러뜨리고 올라온 모양이군.. 큭, 방심할 수 없는 상대야.

마키: ......상당히 심취해 있는 걸.

호노카: 그럼, 덤벼라!

마키: .......그다지..

호노카: 에에, 어째서~노조미랑 린은 상대해 줬으면서, 호노카랑은 놀아주지 않는 거야? 마키 바보, 치사해-!

마키: 갑자기 원래 모드로 돌아오지 말라구. 그냥 좀 지친 거 뿐이야..

호노카: 그럼, 체력 회복을 위한 빵을!

마키: 마왕이 빵을 줘도 되는 거야?

호노카: 으..으응? 무, 물론이지. 왜냐하면 난 빵의 마왕이거든.

마키: 방금 전엔 본관 3층을 지배하는 대마왕이라며..

호노카: 3층도 지배하고, 빵도 지키는 대마왕이야. 

마키: .....그래..아무렴 어떨까.


[마키, 호노카가 건네준 빵을 먹는다.]


마키: 아, 바삭하네.

호노카: 그지? 호노카가 최근 먹어본 빵 중에 제일 맛있다구♡ 역대 먹어본 빵 중에는 랭킹 50위 안에 들 정도야!

마키: 대체 그동안 빵을 얼마나 먹은 거야?!

호노카: 먹은 빵의 갯수 같은 건 세지 않는 걸. 그저 먹을 뿐이야.

마키: 그 대사, 진짜 마왕 같았어...으음, 어쨌든. 슬슬 연습시간도 다 되었는데 위로 가야되지 않을까.

호노카: 안 돼-!

마키: 어휴. 그럴 줄 알았어.

호노카: 순순히 보내주지 않을 테야! 왜냐면 난 대마왕이니까~날 무찌르고 가야 해!

마키: 어떻게 무찔러야 하는데?

호노카: 우웅...... 

마키: 생각 안 해본 거야?!

호노카: 으음, 지금 생각하는 중인 걸.. 뭘 해야할까...우웅..

마키: .....

호노카: 생각이 안 나...으으....


노조미: (뒤에 숨어서 소근소근) 와시와시! 와시와시해버렷~!


마키: 다 들리거든?!


린: (뒤에 숨어서 소근소근) 귀여운 포즈로 러브 애로우슛을 쏴달라고 해라냐!


마키: 다 들린다니까! 그리고 러브 애로우슛은 우미 전용이잖니..

호노카: 움, 그런 것도 좋지만 역시.. 놀이하면, 술래잡기지!(후다닥)

마키: 갑자기 시작하는 게 어딨어-?


[호노카 재빨리 달리기 시작한다..

..허나, 망토 끝이 누군가에게 잡힌다.]


??: 소란스럽군요.. 이렇게 뛰면 어떡합니까?

호노카: 히익! 귀신이다!

우미: 아닙니다. 소노다 우미입니다.

코토리: 정직한 자기 소개..

호노카: 코토리도 있었네. 안녕!

코토리: 안녕, 호노카♡

우미: 발랄하게 인사를 나눌 때가 아닌 거 같습니다만.. 곧 연습 시간이라구요?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호노카: 우웅~ 그렇게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하면, 너무 어려워서 호노카는 모르겠다구.

우미: 질문은 딱히 여러 개를 하진 않았습니다만.호노카, 복도 한복판에서 장난을 치면 모두에게 민폐잖아요.

호노카: 우으... 아직 장난은 시작도 안했는데...

우미: 조금은 자각해주세요. 아랫층부터 시끌벅적한 소리가 울렸다구요?

호노카: 으으...

노조미: 우미한테 혼나다니, 반성하래이 호노카!

호노카: 와앗? 어째서.. 호노카의 잘못인거야?

린: 그래, 호노카 반성하라냐.

호노카: 흐윽.. 호노카 잘못했어요..


마키:.... 잠깐. 뭐하는 거야? 가장 시끄럽게 논 건 린이랑 노조미잖아.

노조미&린: (흠칫)

우미: 그랬군요. 노조미와 린도 합세해서...

린: 린은 아니다냐! 그냥 대마왕의 하찮은 부하일 뿐이다냐!

마키: 아까는 오른팔이라며, 갑자기 지위가 하찮아졌잖아.

우미: 정말이지, 반성하세요.. 린이랑 호노카는 그렇다쳐도, 상급생인 노조미는- 장난을 말리지는 못할 망정 함께 어울리다니.. 

노조미: 내는..

우미: 실망이네요.

노조미: (울적)

코토리: 우미야... 다들 너무 시무룩해졌어. 그만하는 게 좋지 않을까아...

우미: ...음.


호노카: (시무룩)

노조미: (울적)

린: (추욱)


마키: ...당한 건 나인데 어째서 너네가 더 축 쳐저 있는 거야? 의미 모르겠어.

우미: 흐음. 어쨌든 여기까지 할까요. 곧 연습시간이기도 하니.. 다함께 옥상으로 올라가죠.

호노카: 오옷! 라스트 플로어다!

마키: 회복 빨라!?

노조미: 제일 먼저 옥상에 올라가는 사람이, 진정한 마왕의 후계자데이!

린: 우와앗- 놓칠 수 없다냐! 린이 먼저 간다냐!

호노카: 으아아, 잠깐? 대마왕은 나 아니었어?! 그리고 호노카를 두고 먼저 가지 말아줘-

[후다다닥-타닷-]


우미: .... 훈육이 전혀 의미가 없군요.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집니다.

마키: 뭐... 어쩔 수 없으려나...우리도 가자.

우미: 네..

코토리: 우미야..마키야..힘내..

 

 

5.

하교길

 

마키: 오늘은 정말 고생이었어.. 그 세명이 느닷없는 장난을 치는 바람에..

호노카: 뭐?

마키: 깜짝이야! 인기척 좀 내고 다녀줄래..?

호노카: 헤헤~마키야, 오늘 즐거웠지?

린: 간만에 몸 좀 풀었달까, 그런 시원함이다냐!

마키: 별로... 나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였고. 말려든 거 뿐이니까.

노조미: 아아~ 아까 마키는 정말 귀여웠는데♡

마키: (째릿)

노조미: 후후♬

린: 마키, 말은 그렇게해도 우리랑 다 어울려줬으니까-냐아.

호노카: 응, 응! 마키는 역시 착해~.

마키: 붸...뭐? 의미 모르겠어.

노조미: 후후, 난처한 장난인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어울려줬다는게- 착하다는 거래이♪

마키: 흐..흥...그다지.

호노카: 앗, 새빨개진 마키 귀여워~

린: 귀엽다냐~

노조미: 귀여워!

마키: 그, 그만해! 나, 난 집에 갈 거니까... (후다닥)

 

 

 

[한발자국 뒤]

우미: 정말이지... 장난이 심하다니까요.

에리: 노조미까지...

하나요: 린이 텐션이 올라가면, 말리기 어려우니까....

니코: 정말이지, 어쩔 수 없다니까니코! 아직도 한참 어린애들 같아~.

코토리: 움, ...즐거워 보이니 괜찮지 않을까?

일동: .......그런가... (마키야..힘내..)

 

 

호노카: 같이 가-

린: 또 달리기 대결이라면, 질 수 없다냐!

노조미: yeah, yeah-☆

마키: 아니라고! 셋이서 졸졸 쫓아오지 말아줄래애?




:
Posted by 새벽(dawn)
2015. 5. 1. 03:19

[내청춘] 결혼한다면 글/기타2015. 5. 1. 03:19

드림 상황을 설정, 작성해본 겁니다.
주요남캐인 하치만, 하야마, 토츠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황과 설정은..사심으로..구성되어 있습니다..아마도.



1.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하치만: 뭐야, 지금 깬 거냐? 세상 모르고 자던데. ...많이 피곤했나 보네. 별로 늦지 않았어. 아침은 내가 대충 차려뒀으니 먹으면 돼-아니 잠깐, 그 얼굴은 뭔데. 나도 요리 정도는 할 줄 안다고. 아침엔 밥이랑 국이면 충분하잖아? 식성까지 파악해서, 부인이 잠든 사이 아침을 차려놓다니- 제법 로맨틱한 시추에이션이란 생각이 드는 걸. ...아니라고. 그렇게 딱잘라 말하는 건 좀.... .... 어이..농담이면 농담처럼 하라고. 놀라잖냐. 됐고, 빨리 앉아라. 국 식겠다.

하야토: 일어났어? 햇살이 너무 밝아서 커텐을 쳐뒀어. 으응, 늦잠 잔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나저나 너는- 곤히 잠든 모습이 제법 무방비하구나. 나도 모르게 계속 봐버렸는걸. 부끄럽다니, 우리 사이에 무슨... 그보다 자, 식사하자. ..내가 직접 차렸다기엔 별 거 없지만-그냥 빵이랑 계란 프라이 정도야. 그런 걸로도 기뻐해주는 거야? 하핫, 이쪽이야말로 기쁘네. 그럼 식사할까.

토츠카: 좋은 아침-! 헤헷, 우렁찬 기상이야!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지각할지도 모른다구-? 전혀, 얼굴 붓거나 하지 않았으니 걱정 말고 이쪽을 봐봐. 널 위한 아침을 차려봤어. 어때-? 조금 칭찬해주고 싶어지지 않아? 어.. ..어라. 으, 베이컨은 안 먹는다고...? 미안... 나, 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네.. 이건 스스로한테도 마이너스인걸. 대, 대신 과일은 어때? 이건 괜찮구나. 휴우, 다행이다.. 있잖아, 너에 대해 더 많이 알려줘. 네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제대로 알아서, 늘 네가 좋아하는 걸로만 준비할 수 있게!



2. 출근 준비

하치만: 햇살은 은혜롭게 쏟아지고, 바람은 정겹게 살랑이고.. 그야말로 그날이구만, 그날. 뭐냐니..당연히 출근하기 싫은 날이지. .....후우, 그래 알고 있다고. 이렇게 말은 해도 지각 않고 매일매일 성실히 일을 나간다고? 너야말로 잘 준비하라고. 저번처럼 서류 두고 가서 한바탕 난리 피우지 말고... 음, 눈빛이 매서운걸. 혹독한 사회에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겠어. ..실없는 소리여도, 넌 잘 받아주잖냐. ...어이, 오늘은 정시 퇴근이야? -아니, 끝나고 시간이 맞으면.. 데리러 갈까, 하고 생각한 거 뿐이야. 어어..그래. 알았다고, 그럼, 그 시간에.

하야마: 이런 거, 좋네. 응? 당연히 너랑 같이 이렇게 준비하는 거 말야. 하루를 함께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나거든. 하하, 물론 그게 너라서 더 좋은 걸지도. -낯간지러워도 어쩔 수 없어. 남들이 보는 앞에선 제약이 많고, 스스로도 위압감이 드니까..단둘이 있을때 더 솔직하고 흐트러지는 건 당연한 거야..-나에게 있어서, 말이지. 어라, 넥타이 해주는 거야? 하하, 네 행동이 더 낯간지러운걸. 미안, 싫단 얘긴 아니니까- 좀 더, 가까이 와줄래?

토츠카: 앗, 하품. 졸리면 커피 더 마실래-? 헤헤, 내 거 한 모금 마셔. 아침은 힘들지. 일어나서 바로 출근해야 되니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니까, 힘낼 수 있는 건지도 몰라. 너도 그렇지? 후후, 같은 마음가짐이네-. 엘리베이터까지 손 잡고 갈까? 그냥 위로 받고 싶어서.. 안 돼? 앗, 허락 받았다. 그럼 손을 주세요-따뜻한 손, 위로가 되니까. 기분 좋아-. 그럼 오늘도 같이 나가볼까.






:
Posted by 새벽(dawn)
2015. 3. 22. 00:11

[포켓몬/히카리+엠페르트] 화관 글/포켓몬2015. 3. 22. 00:11

2015.3.22 포켓몬 전력 참여


비석처럼 피어난 꽃을 꺾었다.

그라데시아는 까다롭다. 토양, , 햇빛이 완벽한 조건일 때만 꽃망울을 터뜨린다. 앞마당에 그라데시아의 모종을 심고 퍽 애지중지 길렀다. 뙤약볕에 시들까, 폭우에 꺾일까 노심초사하기 일쑤였다. 포켓몬들 중에서도 엠페르트는 유독 그라데시아를 좋아했다. 그 애는 팽도리였을 때부터 꽃만 보면 좋아라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라데시아를 함부로 밟지 말라고, 엠페르트에게 호통을 치고는 했다. 꽃을 해치는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 그러면 엠페르트는 구석에 앉아 망연히 하늘만 보았다. 꽃은 다시 심으면 된다는 걸 몰랐다. 널 위해서라면, 전부 꺾어 가슴에 달아줄 수도 있었는데.

분홍색 꽃잎 위로 투명한 이슬이 굴렀다. 그라데시아는 간신히 꽃을 피우자마자 줄기가 잘려 나갔다. 나는 꽃받침을 다듬고, 얇은 줄로 꽃들을 이어 끼웠다. 어린 아이의 손발을 만지듯 살살, 조심스런 손놀림으로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그라데시아 화관을 완성했다.

화관을 들고 집을 나섰다. 포켓몬들과 함께였다. 코우키와 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참석하고 싶단 의사를 밝혔었다. 옆에서 위로해주고 싶다했다. 나는 거절했다. 장례식은 우리끼리 치르겠다고 전했다. 여기서 우리끼리란 나와 포켓몬들을 말한다. 관을 든 눈설왕이 내 앞에서 걸어 나갔다. 날쌩마, 로토무, 찌르호크, 에테보스가 일렬로 내 뒤를 따랐다. 그것이 우리들의 대형이었다.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난 뒤, 이렇게 하기로 우리들은정했었다. 약속이었다. 언젠가 또 오늘과 같은 날이 오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가는 길을 위로해 주자는 맹세였다.

행렬은 진실호수로 향했다. 어느새 나타난 엠라이트가 구슬픈 새처럼 울었다. 그라데시아와 같은 색의 엠라이트는 내가 첫 번째로 본 신비한 포켓몬이었다. 그것이 시발점으로, 나는 소설 속 모험가처럼 신오우를 누볐다. 문헌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전설의 포켓몬을 만나고, 아무도 간 적이 없는 반전세계를 다녀왔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길고 험난한 여정을 이겨냈어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있다. 시간과 공간을 관장하는 포켓몬들도 내 소원은 이루어줄 수가 없다. 한 번 숨이 달아난 생명은 이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신도 바꾸지 못하는 운명의 법칙이다. 그 법칙이 나에게서 엠페르트를 데려갔다.

그 아이와 처음 만난 장소에 관을 내려놓았다. 밤처럼 검은 관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얼굴의 내 첫포켓몬에게, 분홍색 화관을 씌워주었다. 그라데시아 꽃은 생생하고 예뻤다. 모두들 우는 것 같았다. 몸을 떨고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다만 나만이 울지 않았다. 운다는 건 모독 같았다. 이제 엠페르트와 배틀을 함께 할 수 없고, 콘테스트도 나가지 못하고, 배틀 멤버의 첫 번째 주자는 다른 포켓몬으로 바뀔 것이다. 그렇다고 잊는 건 아니다. 엠페르트와 진실호수에서 처음 만나고, 배틀하고, 진화하고, 배지를 얻고, 갤럭시단을 무찌르고, 전설의 포켓몬과 대면하고, 챔피언 로드를 올라가고, 사천왕을 이기고, 마침내는 명예의 전당에 오르던 모든 순간을 잊는 건 아니다. 생애와 같았던 순간들을 눈물로 흘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운다는 건 모독 같았다. 나는 슬픔도 고독도 세월에 쓸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 아이와 함께 했던 시작과 끝을 간직할 것이다. 그렇기에 운다는 것은.

한 줌의 추억이 관 뚜껑과 함께 닫혔다. 그라데시아 꽃잎 하나가 빠져나와 초록 풀밭에 앉아 있었다. 너를 잊지 않고, 살아갈 거야. 마지막 그 말은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지 못했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포켓몬들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제 너를 처음 보았던 순간은 점점 희미해지겠지. 그리고 이제 너를 떠올리려 할 참이면, 처음 만났을 때 그 여린 얼굴이 아닌관 뚜껑 아래 그림자가 진 창백한 얼굴만 생각이 나겠지. 배틀을 할 때도, 콘테스트에 나갈 때도, 어디에도 너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모든 순간 나는 너를.

간신히 꽃잎을 주워 손안에 쥐었다. 축축한 손아귀 사이로 보드라운 잎새가 빠져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자리에 맥없이 쓰러졌다. 엠라이트의 울음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그 소리는 마치 뱃사공의 노래처럼, 호수 위로 여울져 떠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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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람이 부는 방향에 서 있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애가 걸어오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벅차 보였다. 몇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그 애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머리칼은 한층 색이 옅어지고 가늘어져 있었다.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안 된다고 했다. 그건 그가 그 애에게 안 된다고 말한 몇 안 되는 사건이었다. 머리를 자르면, 그 애는 단발인 모습으로 그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하얀 눈의 벌판 위에 떨어진 색을 잃은 이파리처럼, 희멀건 머리카락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윽고, 그는 하얀 벌판 위를 걸을 때마다, 이파리를 볼 때마다, 그 애의 머리카락을 생각할 것이다. 또한 머리를 자르고 싶어, 라고 말하던 맥없는 목소리. 그리고 단발로 자르자 숱이 없어 더욱 메말라 보이던 뒤통수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기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애는 별다른 투정도 부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 머리를 자르고 싶어,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애는 그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매일 만나면서도, 특별한 추억은 심어주지 않으려했다. 매일 같은 복장에 같은 인사말을 건넸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비슷한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꺼내서 풀어놓았다. 다른 옷을 입거나, 특별한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날 하루는 즐거울 것이다. 그 애 자신도 즐거울 것이다. 다만 어느새 홀로 남겨져, 특별했던 하루하루를 되새겨야하는 그만이 괴로울 것이다. 따라서 그 애는 자신이 양보하기로 했다.

사랑은 계속 될 테지만, 특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애는 느리게 굴러가는 시침처럼 하루를 보냈다. 정해진 시각에 굼뜬 동작으로 나타났다. 첫인사는 늘 같았다. 하는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그저 말일 뿐인 대사들로 시간을 채웠다. 그러면 그는 다름없이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그가 하는 말은 응, 그래, 알았어, 하는 대답들뿐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원체 말이 없는 사람이냐면 그건 아니었다. 그는 달변가였다. 하지만 그 애 앞에선 달변가일 이유가 없었다. 굳이 꿀을 바른 문장들로 현혹시키지 않아도, 어린 새는 둥지 안에 앉았다. 그는 그럴 듯한 말들을 꾸며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았다. 그저 응, 그래, 알았어, 하는 대답만 할 뿐인데도 표정이 변하지 않는 그 애가 좋았다. 늘 웃는 그 애가 좋았다. 그 미소가 천천히 색이 바래고 시들어가도 그대로 좋았다.

모든 것이 특별하지만, 사랑은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그 애는 오지 않았다.

처음, 시계를 확인했다. 오래된 손목시계라 약이 다 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머니에 든 그 애의 포켓치가 같은 시간을 가리켰다. 불안감이 어둔 장막처럼 들이닥쳤다. 새빨간 포켓치는 선명하고 정확하게 시간을 표시했다. 포켓치를 준 것은 하나도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그 애가 말했었다. 그동안 그 애는 포켓치를 4번이나 바꿨고, 그에게 주는 포켓치는 한 달도 쓰지 않은 것이므로, 결국은 새 것을 사는 것과 다름없다며 우겼다. 이런 여아용 포켓치를 살 리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그 애는 볼을 부풀렸다. 그럼 길에서 주운 거라고 생각해. 길에서 주운 다음 주머니에 넣은 것을 자꾸만 깜빡해서, 계속 들고 다니는 거라고 생각해. 그러면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것이 되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나눈 대화는 또 하나의 판화로, 무한히 재생되는 영상으로 그의 가슴 속 갤러리에 걸렸다. 순간은 영원이 되어야 했다.

다음, 그는 약속 장소 앞을 서성였다. 늘 그 애가 빈약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걸어 올라왔던 언덕. 그 언덕의 꼭대기까지 마중을 나갔다.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서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말라붙은 두 눈이 떨렸다. 시계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심장도 함께 요동쳤다. 30분이 지나도, 1시간이 지나도, 2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그는 기다리는 일은 그만두고 달렸다. 함께 걸었던 길, 함께 들렀던 가게, 함께 지나왔던 거리를 헤맸다. 어디에도 그 애는 없었다.

이윽고, 지친 발걸음은 낯선 집 앞에 닿았다. 후타바 타운의 녹색 지붕 집. 2층은 그 애의 방이다.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알고 있었다. 2층의 불은 꺼져 있었다. 그는 돈카로스의 도움을 빌려 2층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말끔하게 정리된 방에는 흔적 하나 없었다. 그 애가 옷장을 열어보고, 게임을 하다 끄고, 침대에서 뒤척이다 일어난 흔적도 없었다. 그의 까칠하고 커다란 손이 떨렸다. 1층의 불도 꺼져 있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말 저녁이라 가족과 함께 외출이라도 한 걸지도 모른다. 병원에 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애는 그에게 말없이 떠나지 않는다.

마침내, 그는 그 애가 있을지도 모르는 곳이 떠올랐다. 돈카로스에게 명령을 내리는 입술이 떨렸다. 온 공기에 습기가 들어차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젖었으며 돈카로스의 날개도 젖었다. 비 오는 날에는 비행 포켓몬은 쓰지 않는 게 좋아, 날개가 무거워지니까. 그 애가 말했었다. 물 타입도 겸하고 있음 관계없겠지만, 네 돈카로스는 아니잖아, 그러니 비 오는 날에는 쉬게 해 주는 게 좋아. 그 애가 돈카로스의 새까만 날개깃을 새하얀 손으로 쓰다듬었다.

굵은 빗속을 돈카로스가 날았다. 온 몸으로 거센 물줄기를 맞으며 그도 날았다. 비가 내리는 곳에 태양빛은 없다. 태양이 없으므로, 세상은 그림자로 차게 될 것이다.

 



1차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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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히카] 해와 달이 없는 세계에서

 

1)

 

그 애는 병이 있었다. 그러나 자주 그 사실을 잊곤 했다. 아픈 내색 하나 없었다. 그 애는 늘 그의 곁에서, 아침을 깨우는 새처럼 재잘거리곤 했다. 쉼 없이 살가운 이야기를 쏟아내곤 했다.

절대 그 애는 자신의 병에 대해 입에 담지 않았다. 자신은 영원한 10살을 살 거라고 버릇처럼 말했다. 자신은 영원한 10살이지만, 그는 꾸역꾸역 나이를 먹을 테니 영영 우리들은 이루어지지 못할 거라고. 흘리듯 말했기에 우스갯소리처럼 들렸다. 허나 아니었다. 영원한 10살이 아니어도, 그들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그림자가 겹쳐지면 안 되는 사이었다. 다른 하늘에서 다른 땅을 밝고 다른 곳을 향해 걸어야했다. 아니면 한 사람이 눈을 감고 다른 사람은 뒷걸음질 쳐야했다. 잠시나마 서로의 곁에 머물 수 있는 것은, 그 애가 영원한 10살이기 때문이다.

그 애는 더 이상 그에게 존대를 하지 않았다. 소꿉친구를 대하듯 편하게 불렀다. 호칭과 말투가 바뀐 것은 언제인지 모른다. 나이가 들자 엄마어머니라고 부르게 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움이었다. 다만 그런 일의 반대였을 따름이다. 외려 연상인 그가 더 깍듯하게 그 애를 대하게 되었다. 존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날 때마다, 허리를 숙이고 시선을 낮췄다. 오래 모신 주인을 대하듯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애는 모양새가 우습다며 답지 않게 헤프게 웃었다. 말괄량이 아가씨처럼 웃었다. 그는 그 헤픈 웃음이 좋아 계속 우습게 굴었다. 매일 똑같은 어설픈 놀음에 한결 같은 웃음을 흘렸다. 어린아이 장난과 같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모든 순간은 영원이 되어야했다.

어째서 여행을 시작했느냐고 그가 물었다. 진지한 물음에도 그 애는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이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그에게 뒤집혔을 거라고 내뱉었다. 시치미를 뗄 때 그 애는 먼지가 쌓인 악기처럼 바람이 막힌 목소리를 냈다. 바른 설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병이 있다. 그렇다면 여행은 고사하고 치료를 받는 것이 옳다. 그런데 왜 험하고 고된 모험을 시작했냐고 되물었다. 까칠하고 커다란 손 위로 온화하고 부드러운 손이 겹쳐졌다. 그 애가 읊조렸다.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는 없으니 전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는 것으로 끝맺자고.

그리고 그 애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끝맺는다는 단어를 발음하는 그 애의 입술이 미웠다.

그는 그 애의 남은 날을 알고 있다.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 자신의 삶이라면 언제 끝나도 무익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의미하더라도 그 애만은 아니다. 그 애는 세상의 유일한 색이며 향이다. 만남이 조금 더 일찍 찾아왔더라면, 그의 일생은 송두리째 바뀌었을 것이다. 그는 두 사람을 멀리 두게 한 세월의 차이와 운명의 머뭇거림을 한탄했다. 해도 달도 없는 세상에서 너무 오래 헤맸다.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다기엔 27년은 너무 길었다.

 

밤마다 그 애가 찾아와 주었으면 하고 빌었다. 아무리 악행을 저지르고 궂은 일을 해도 그는 건강했다. 신체가 깎이거나 부스러지는 일 하나 없었다. 두 눈만이 휘휘하게 말라붙어 갔다. 그는 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그 애의 눈에 비치는 자신을 생각했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몸집이 큰 해골 같은 사내를 그 애는 뭐라고 여길까. 사람이 아닌 유령으로 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애는 부정이란 것을 모르기에 무엇이든 고개를 끄덕이고 받아들인다. 아니다. 처음에는 그를 부정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부정하지 않는 것일까. 졸음이 오지 않았다. 답 없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쇠사슬처럼 몸을 칭칭 감았다. 오늘도 잠이 들지 못할 것이다. 잠을 자지 않고 하루를 벌 수 있다면, 평생 잠들지 않고 싶다.

 

*****


그 애는 낮에 찾아왔다. 항상 같은 옷차림이었다. 분홍색 머리핀. 빨간 코트. 하얀 니삭스. 분홍색 부츠. 코트 아래의 다리가 예전에 비해 비쩍 말라있었다. 그러나 여전한 미소로 다가왔다. 안녕. 소소하지만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그도 안녕. 고개를 끄덕인다. 그 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온다. 그는 그 애의 하루 속에 오직 자신만이 있기를 바랐다. 그의 하루 속에 온전히 그 애만이 있는 것과 같이.

두 사람은 특별한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 애가 먼저 운을 뗐다. 추워. 속뜻을 금세 알아챘다. 모든 신경은 작은 아이에게 곤두서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 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끌어안았다. 품속으로 들어왔다. 작고 마른 몸이 어린 새처럼 둥지를 찾는다. 그 애의 허름하고 메마른 둥지는 온 노력을 기울여, 껴안았다. 따뜻해. 어린 새가 말했다. 거짓인 걸 알았다. 둥지는 겉부터 속까지 차고 무뎠다. 난로처럼 주위를 덥히는 것은 바로 어린 새였다. 둥지는 대답이 없었다. 무언가 재미난 농담이라고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나지 않는다.

그 애가 또 먼저 입을 열었다. 너와 같은 나이가 되고 싶어. 그의 동공이 커졌다. 스물일곱의 나와 네가 만났으면 좋겠어.

스물일곱의 나와 네가 만났으면 좋겠어. 스물일곱의 나는 어른일 거야. 놀라운 일도 기적 같은 일도 없는, 어른일 거야. 스물일곱의 나는 시로나씨처럼 길고 멋스러운 코트를 입고 있을 거야. 그 때쯤 되면 나도 검은색이 잘 어울릴지도 몰라. 아니면 칼로스의 챔피언처럼 새하얀 정장을 입을 수도 있지. 어쨌든 더는 이런 옷은 안 입을 테니. 그리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화장을 할 거야. 구름시티 같은 향수도 뿌릴 거야. 그리고, 그리고. 스물일곱인 내가, 열 살인 너와 만났으면 좋겠어.

그 애는 그를 보지 않았다. 먼 하늘을 보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은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너를 알아볼 거니까. 스물일곱의 나는 어른이니, 뭐든 지금의 나보다는 나을 테지. 그리고 너는 아무 것도 모르던 열 살이니, 지금보다 나을 테고. 우리한테는 그게 더 좋았을 걸. 그게 더 좋았을 텐데. 그럼 내가 너를.

그는 그 애의 마지막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애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말이 멈춘 사이 까무룩 잠이 든 것이다. 잠이 든 안색이 창백했다. 둥지는 어린 새를 상냥한 손길로 뉘였다.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다르게 생각했다. 스물일곱이 되어도 그 애는 빨간 코트가 어울릴 것이다. 높은 굽의 신발을 신지 않아도 눈에 띌 것이다. 짙은 화장이나 향수로 꾸미지 않아도 그저 미소 짓는 것이 훨씬 아름다울 것이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 애가 스물일곱이건, 그가 열 살이건, 혹은 다른 나이의 다른 사람이건, 그는 그 애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틀림없이 붙잡았을 것이다. 물체의 형태에 따라 그림자가 바뀌듯 애정의 형상만이 달라졌을 것이다. 태양이 비추니 그림자가 사라지는 일은 없다. 태양은 변하지 않으므로. 늘 같은 자리 같은 밝기로 빛나야하기 때문이다.

 


1차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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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벽(dawn)



그는 어릴 적 머리가 좋은 소년이었다. 동네에 또래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또래들과는 수준이 맞지 않았다. 대신 그는 기계를 만지며 놀았다. 불확실하고 애매한 인간보다 기계는 훨씬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계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보기에 인간만큼 불완전한 존재는 없었다. 일률적인 체제를 고수하는가 싶으면서도 일탈을 원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들은 같은 대화, 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그 때 그 때 다른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는 유년 시절 겪었던 몇 가지 세세한 일들을 기억한다. “같이 놀자고 말한 또래에게 싫어.”라고 답하자 일그러지던 아이의 표정,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하는 선생 앞에서 무슨 표정을 지을지 몰라 가만있자 선생이 작게 내뿜던 한숨, 무표정하게 다친 포켓몬을 바라보자 아이답지 않은 그 얼굴을 썩 집어치우라고 날아오던 동네 아저씨의 고함.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일에 그는 전혀 익숙해질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소년은 사람들 사이에 머물 곳을 찾지 못했고, 어느덧 노력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게 되었다.

대신 소년의 마음엔 호기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인간을 이토록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인간들에 비해 이지적이라 믿었던 자신조차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열이 끓어오르고 때로는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며 벌벌 떨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왜 때로는 냉철한 그도 자신조차 예측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

이런 질문들은 그의 호기심에 불을 붙였고, 그는 숱한 서적을 탐독하고 인간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랜 연구 끝에, 그것이 감정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세상이 불완전한 것은 감정 때문이다. 어린 그는 이 감정이라는 것 때문에 세상이 흔들리고 인간이 모순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포켓몬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포켓몬을 이용해 야욕을 채우려는 인간들도, 이런 인간들을 내버려두는 세상도. 전부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중대한 진리를 깨닫자 그의 목적이 단숨에 정해졌다. 망설일 틈도 없이 결정된 한없이 논리적인 결정이었다.

감정 때문에 세상이 이렇다면, 감정이 없는 세상을 만들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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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새로운 바람은 그가 자라고 청년이 되면서 차근차근 진행시켜나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식과 수완을 동원해 긴가단이라는 조직을 만들 수 있었고, 새로운 세상을 탄생시키기 위한 절차도 완비할 수 있었다.

 

소녀를 만나기 전까진 정말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는 소녀를 보면 말을 잃곤 했다. 처음 보았을 때에도 그랬던 것 같다. 사실 그는 명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을 홀릴 정도로 말재간이 좋은 그지만 그녀 앞에선 어떤 말을 할지 잘 떠올리지 못했다. 청남색 머리카락을 한손으로 쓸어내리며, 낯선 이에게도 방긋 웃는 작은 소녀 앞에 서면- 그는 방 안에서 홀로 기계를 만지던 유년으로 돌아간 듯 했다. 소녀의 미소는 어린 시절 그가 곧잘 상상했던, 그가 방 안에서 외로이 기계와 놀거나 책을 뒤적일 때 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 앞에 나타나주기를 바랐던, 작은 천사의 미소와 닮아 있었던 것이다.

소녀를 볼 때마다 그는 그런 유년의 환상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야말로 그가 혐오하는 감정의 결정체라는 것을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억누르려 해도 소녀를 만나면 또다시 그렇게 되곤 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란 것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는 그때야 알았다.

어린 소녀. 깊은 바다와 같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화사한 빛깔의 원피스. 새하얀 비니와 개나리색의 머리핀. 자신의 포켓몬을 어루만지며 밝게 웃는 모습. 낯선 이에게도 다정하게 구는 모습.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던 포켓몬을 좋아한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한다.’ ‘포켓몬과 함께 사는 세상이, 지금이 너무 좋다....’는 말들.

그녀의 이름은 히카리(). 긴가단의 두목, 천재였던 소년은 작은 빛과 같은 소녀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아마 소녀는 모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속으로만 애를 끓었을 뿐.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그녀를 동경도 하였다가, 사랑을 하였다가, 어루만지고 싶다가, 이런 감정을 내어준 그녀가 밉다가, 증오스럽다가, 사라져버렸으면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그가 추구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만 할 뿐, 자신에 대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싶은 모습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적막한 바람이 흐르는 창기둥 아래서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용히 당당하게 걸어오는 소녀를 보며, 그는 잠깐 소녀를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어땠을까하는 답지 않은 사념에 빠져버리기도 했다. 결국 어릴 적 그의 망상 속 작은 천사는, 빛이라는 이름을 달고 그의 앞을 막아서러 온 셈이다.

인생에 걸쳐 설계해 온 목표가 무너질 수 있는 극한 상황에서, 그는 심장이 흔들렸다. 두려움에 의한 떨림도, 곧 완성될 세계에 대한 기대감도 아니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런 것들이 아니라- 이렇게라도 자신에게 빛이 찾아와 준 것에 대한 기쁨으로 인한 두근거림이었다. 비록 이런 방식이긴 했지만, 결국 소녀는 그의 인생에 찾아왔고, 심장을 두드렸으며, 그리고 문을 열어주었다. 어린 소년이 꿈꾸던 상상 속의 천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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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벽(dawn)
2015. 1. 31. 01:49

[포켓몬/쥰히카] 낡은 편지 글/포켓몬2015. 1. 31. 01:49



하얀 눈이 까만 밤하늘을 비집고 내려왔다. 히카리는 입김을 불어 보았다. 그러나 하얀 입김이 나올 만큼 춥지는 않았다. 그녀는 무릎까지 오는 갈색 부츠를 신고, 조금씩 눈이 쌓이기 시작한 거리를 밟아 내려갔다. 짧은 치마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었지만 다리가 시리지는 않았다. 눈은 곧 쌓일 것 같았다. 아니, 금방 전부 녹아버릴 지도 모른다. 날씨라는 것은 원체 변덕스러우니 말이다.

먼발치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실루엣이었지만, 걸음을 더할수록 그 윤곽이 또렷해졌다. 노란 머리에 까만 머플러를 두른 사내였다. 히카리는 조금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참았다. 검정이라니, 그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색이었다.

그것은 스물 두 번째 첫 만남이었다. 익숙하기도, 생경하기도 한 광경.

히카리와 쥰은 어느새 마주보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사말이 튀어나왔다.

안녕.”

안녕.”

그리고는 한참이 말이 없었다. 서로를 멀뚱하니 보다가,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다가, 머리를 긁적이기도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던 것이다. 아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일수도 있겠다. 먼저 말을 건넨 건 쥰이었다.

잘 지냈어?”

뻔하디 뻔한 첫인사. 히카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예전에는 둘 사이에서 쉴 새 없이 말들이 쏟아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벌써 십 년도 전의 일이다. 남녀 사이라는 게, 인간 관계라는 것이 십년 동안 한결 같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은 스물 두 번째 첫 만남이었다. 유년 시절이 지나고 두 사람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거리감도 늘어갔다. 만나는 것이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으로 줄다가 마침내 일 년에 한두 번도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이 올해의 첫 만남이었다.

쥰은 머플러를 고쳐 매며 생각했다. 이쯤 되면 자신이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질색했는지도 잘 모를 지경이다.

그 머플러, 웃겨.”

느닷없이 히카리가 한 마디를 던졌다. 쥰은 멍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히카리가 이렇게 작았던가? 그게 아니라 쥰이 자란 것이다. 유년 시절엔 두 사람의 키가 엇비슷했지만,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그 편차가 커지기 시작했다. 쥰은 말 그대로 나무에 물 주듯이 쑥쑥 자라났고, 반면 히카리는 매년 눈으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아마 지금은 15cm도 더 차이 날 것이다. 히카리는 한 해 사이 몸이 조금 더 마르고 머리가 자란 것 같았다. 그리고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안녕하고 말하는 목소리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데.

검은색이라니, 웃겨.”

언제까지 초록색을 할 수는 없잖아.”

그래도 넌 초록색이 어울려.”

일 년 만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머플러 색에 대한 토론이라니. 쥰은 할 말이 없었다. 그녀를 만나서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아아, 그런데 그 말이 뭐였더라.

그러는 너야말로 칙칙하네.”

쥰은 히카리의 옷을 보며 말했다. 그녀는 회색 코트에 갈색 부츠를 신고 있었다. 안에 입고 있는 원피스마저 까만색이라, 어떤 색감도 느끼기 어려웠다.

어린 아이 같은 색은 이제 입을 수 없잖아.”

그녀는 어릴 적, 분홍색 원피스와 새빨간 코트를 즐겨 입곤 했다. 그리고 하얀 비니를 눌러쓰고, 분홍색 장화로 신오우 이 곳 저 곳을 누볐다. 그것이 벌써 몇 년 전 일이던가. 쥰은 지나간 세월을 헤아리기도 벅찼다. 그런데 그 세월이 히카리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만큼, 긴 것인지는 의문이 솟았다.

분홍은 이제 싫은 거야?”

싫다기 보담도, 입으면 부끄러워지는 그런 나이가 된 거지.”

나도 마찬가지야. 초록색 머플러는 부끄럽거든, 이제.”

두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어디를 향해 걷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렇게 흩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발이 닿는 곳까지 걸어볼 생각인 것 같았다. 그다지 날도 춥지 않으니 상관없었다. 까페 같은 곳에 들어가 마주 보고 앉아있느니, 나란히 서서 걷는 게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요즘 어떻게 지내?”

, 대학교에서 이것 저것, 배우는 중이지.”

히카리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신오우가 아닌 칸토에서 말이다. 그녀는 고고학을 전공해 대학원까지 진학할 계획이었다. 미래에는 고고학자나, 혹은 고고학 교수가 될지도 모른다.

배틀은 이제 안 해?”

. 하지 않아. 포켓몬들하고는 놀지만.”

그 말에 쥰은 한숨을 작게 쉬었다. 배틀을 하지 않는다고? 히카리는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신오우의 짐을 재패하고 챔피언을 무너뜨릴 만큼 배틀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긴가단을 괴멸시키고, 아카기의 야심을 막은 것도 그녀의 배틀 실력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배틀은 하지 않는다, 쥰은 그 말에 가슴이 시렸다.

쥰은 아직도 하지, 배틀?”

으응. 다음 달에 사천왕 승급 시험을 치를 거야.”

반면 쥰은 여전히 트레이너의 길을 걷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올린 결과, 그는 엘리트 트레이너가 되었고- 그 중에서도 으뜸가는 실력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천왕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의 입지를 굳힌 것이다.

히카리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쥰은 분명 잘될거야.”

고마워.”

그리고 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코우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시로나 씨의 이야기를 꺼내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사이, 쥰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낡은 편지였다.

이거.”

이게 뭔데?”

쥰은 편지를 히카리에게 건네주었다. 히카리는 편지의 겉면을 살펴보았지만, 아무 표시도 없었다.

너한테 썼던 편지야. 부치진 못했지만.”

?”

“예전, 너한테 편지를 썼었어.”

히카리가 봉투를 열려고 하자, 쥰이 막는다.

지금 읽지 말아줘. 나중에, 나중에 읽어.”

히카리는 묵묵히 편지 봉투를 바라보았다. 고작 몇 년 사이에 편지 종이가 이렇게 낡을 수 있는 건가. 종이가 낡은 것은 꼬깃꼬깃한 탓이었다. 아마 수십 번도 더 편지지를 넣었다가 꺼냈다가를 반복했을 것이다. 히카리는 손바닥으로 종이를 반듯하게 펴보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럼 갈게.”

벌써?”

두 사람이 만난 지 아직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내년에 또 볼 수 있겠지.”

으응. 그럴 거야. 아마도.”

어째서 더 빨리 볼 수는 없는 거야? 더 자주 만나면 안 되는 걸까? 둘 중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안녕.”

안녕.”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쥰이 떠났다. 어느새 눈이 어느 정도 쌓여서, 그가 떠난 자리에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히카리는 쥰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자리에 자신의 발을 올려놓고 섰다. 그리고 낡은 편지지를 열어보았다.

편지에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늘상과 같은 말이었다. 히카리와 쥰이 유년시절 곧잘 떠들곤 하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히카리에게는 그다지 소소한 내용으로 와 닿지 않았다. 쥰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지 너무나도 오래됐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진로가 바뀐 탓일까? 아니, 골은 그 전부터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메워지지 않는 무언가 말이다. 그런 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어쩌면 간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방금 쥰이 떠나기 전. 가지 않고 좀 더 이야기 하고 싶어, 라고 히카리가 말했더라면 될 일이다. 혹은 자주 연락하자, 라고 쥰이 말을 남기기만 했더라도.

편지지에는 안녕, 히카리.’라고 적혀 있었다. 이 말에 왜 이리도 생소할까? 쥰이 소리를 내어 히카리를 이름을 부른 것은 굉장히 오랜 옛날처럼 느껴졌다. 쥰은 편지지에 유독 그 글자를 꾹꾹 눌러 썼더랬다. 안녕, 히카리. 히카리, 히카리라며.

히카리는 편지지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쥰이 떠난 곳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칸토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야 한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어느새 눈이 수북하게 쌓여, 누구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2014.9.20

2015. 2. 1차 수정

음..진단메이커를 돌려서 나온 걸로 쓴 건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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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벽(dawn)
2015. 1. 31. 01:45

[포켓몬/시로히카] 쉬는 시간 글/포켓몬2015. 1. 31. 01:45

2012.6.10

시로히카 학교 AU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히카리는 교무실로 향했다. 품 안에는 교과서와 자습서를 들려 있었다.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창가와 벽을 낀 외진 자리. 그곳이 역사 담당 시로나의 자리였다. 히카리는 조심스럽게 선생님을 불렀다. 그러자 시로나는 바로 그녀를 알아보고는 옆으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저, 선생님. 질문이 있어서요.."

"그래그래. 히카리는 언제나 열심이구나."

 

선생님의 칭찬에 머쓱한지, 히카리는 대답도 않고 책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이 책 저 책의 페이지를 넘겨가다, 어떤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히카리는 이 부분의 교과서 설명과 자습서의 설명이 조금 괴리감이 있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시로나는 말없이 책을 응시했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모의고사나 내신과는 일체 관계 없는 부분이었다. 시로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으응. 그래 이건 말이지.."

 

시로나는 상당히 능력있는 역사 선생님이었다. 대학교 시절에도 성적이 우수해 조기졸업을 하고, 어린 나이에 역사나 교육 관련 서적들의 집필에 여러번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교과서의 아무리 소소한 내용일지라도, 학생들에게 자세하고 깊게 설명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질문을 한 히카리는 답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소녀의 시선은, 물 흐르듯 자신의 지식을 토해내는 선생님의 모습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의 말투, 입술 모양, 움직이는 손 끝, 부드러운 금색 머리칼, 그녀의 모든 것 하나하나가 소녀를 사로잡았다. 히카리는 우등생이었다. 공부는 전교에서 손가락 안에 들고 그 중에서도 역사 과목은 항상 거의 만점을 받다시피 했다. 히카리는 수업에 열중하는 눈빛만으로도,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을 선생님들에게 품게 해 주는 그런 학생이었다. 그리고 난해한 문제도 스스로 풀어나가면서 그 과정에서 배우는 유형이어서, 선생님들에게 질문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게다가 시로나는 언제나 수업이 끝나기 5분 전 쯤, 질문할 시간을 주곤 했다. 하지만 히카리는 그 시간을 이용하지 않고, 언제나 쉬는 시간에 쪼르르 달려와서는 시로나의 책상에 서있곤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미미한 문제들,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들을 잔뜩 껴안고서.

 

"-라는 거란다. 이해했니, 히카리?"

 

시로나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자, 히카리는 움찔 놀라고 말았다. 소녀는 네, 네 하며 대답하기는 했다. 그러나 선생님한테 푹 빠져있던 탓에 말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만 가 볼게요 선생님, 이라는 말도 못하고 히카리는 멋쩍게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쉬는 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선생님과 같이 있고 싶었다. 선생님 얼굴을 조금 더 보고 싶었다. 히카리는 머쓱해져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사실 이런 감정이 무엇인지 소녀는 명확히 알지 못한다. 동경? 존경? 공경? 혹은... 어린 히카리는 그 이상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느끼는 그런 보통의 느낌이 아니란 것은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멀뚱히 서 있는 제자를 보고, 시로나는 또 한번 웃었다. '이 아이는 자기가 왜 여기에 계속 서 있는지도 모르겠지.' 나이차가 심하게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로나는 어른이었다. 질문거리를 만들어서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에게 찾아 오고, 정답은 귀 기울여 듣지도 않는다. 한참을 자신을 붉어진 얼굴로 빤히 쳐다보더니, 가야할 때가 되니 아쉬워서 자리를 뜨지 못한다. 이런 아이의 행동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여전히 히카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로나는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들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곧 있으면 수업 시작할테니 같이 교실로 가볼까. 나는 다음 수업이 9반이니까 너희반은 가는 길이거든."

"앗, 네.. 네 선생님!"

 

 그 말에 금새 얼굴이 밝아져서는. 제자는 선생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간다.

 

 

 

 

아아, 내 제자는 참 순진하기도 하구나. 그러면 다 알 수 밖에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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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벽(dawn)

제목이 아니라..정말로 이런 꿈을 꿨습니다.

날짜는 2012.10.31



 

리본 5개를 다 모으고, 그랜드 페스티벌 무대에 섰을 때, 히카리는 모든 것이 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초보 트레이너에 불과했지만- 이젠 아니다. 일류 코디네이터를 꿈꾸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 그 중에서  리본 5개를 모아 그랜드 페스티벌에 진출하는 사람들은 고작 몇백명. 그 안에 자신도 포함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무리없이 리본을 따 낸 것처럼 그랜드 페스티벌도 순조롭게 이겨나가, 어쩌면 우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선 심사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기 전까진.

 

대기실에서부터 미친듯이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랜드 페스티벌은 일개 마을이나 도시에서 열리는 콘테스트의 예선과는 차원이 달랐다. 톱 코디네이터와 코디네이터 협회의 엘리트들이 심사석에 앉아 있고, 수천의 관중이 자신의 연기를 지켜본다. 그렇게 생각하니 긴장이 감춰지지 않았다. 식은땀이 줄기차게 흘러내렸고 얼굴은 시뻘겋게 상기됐다. 거울 속 안절부절 못하는 자신을 추스르는 데 시간을 쏟은 탓일까- 히카리는 정작 자신이 쥐고 있는 몬스터볼은 확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테이지에 올라가고 나서야, 자신이 다른 몬스터볼을 가지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블 퍼포먼스에 원래 쓰려고 했던 포켓몬은 폿차마와 미미롭. 하지만 자신이 데리고 온 아이들은 성질이 전혀 다른 크로뱃과 마네네였다. 히카리는 식겁했다. 상상조차 못했던 엄청난 실수였다. 자신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를 깨닫자 손발이 바들바들 떨렸다. 극도로 당황한 탓에, 연기 시작의 신호가 울려도 목석처럼 서 있을 뿐, 몬스터볼을 던지지 못했다. 수천 관중의 눈들이 둥둥 떠다니며 자신을 차갑게 내려보는 것 같았다. 정작 자신의 두눈은 어디에 둘 지를 모른채, 그녀는 눈을 꾹 감고 무작정 볼을 던졌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크로뱃과 마네네로는 단 한번도 연기를 맞춰본 적 없었다. 순간의 기지로 위기를 돌파할 만큼의 정신적 여력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몇가지 기술을 외쳤던 것 같지만 사실 무얼 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크로뱃과 마네네는 역시 자신들의 예상치 못한 등장과 트레이너의 당황에 어쩔 줄 몰라했다. 힘없는 기술들이 볼품없게 스테이지 위를 떠돌았고, 소녀 코디네이터는 자신의 몸이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타임 오프. 그리고 싸늘한 정적. 관중들은 박수하나 보내지 않았다. 심사석에서도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자.. 심사평을 해 주시죠.. 어색하게 사회자가 말을 했다. 그러자 가운데에 앉아있는 현직 코디네이터가 무덤덤하게, 하지만 매섭게 한 마디를 쏘아붙였다.

 

[지금 여기에 뭐하자고 올라온 거죠?]

 

히카리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당연한 탈락에 망연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생각하기도 버거웠다.

결국 "자신의 실책이다. 해이한 정신상태 때문이다. 나사가 하나 쯤 빠졌었나 보다."라고 결론 내렸지만- 그래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실수였다. 변명도 할 수 없는 범위의 실수. 초보 트레이너라도 몬스터볼을 잘못 고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도대체 자신 안에 무엇이 일어나서 이런 한심한 일을 저지른 걸까?

자책을 머금은 한숨과 함께, 대회장을 등지고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후타바 타운으로 들어설 때 쯤에야 그녀의 몽롱했던 정신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 작은 마을의 한적한 풍경을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신은 그런 큰 무대에 설 그릇이 아니었단 것을.

 

집에 가자 어머니는 말없이 딸을 맞아주었다. 다정하게 등을 몇 번 두드려주고는, "괜찮다."고 다독였다. 하지만 이후에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익숙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걸터 앉아, 그녀는 스스로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랜드 페스티벌에 진출했다고 해서 일류 코디네이터가 될 거라는 것은 단순한 오산이었다.

매년 그랜드 페스티벌에 진출하는 수백명의 선수들 중에 이름을 알릴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내는 사람들은 고작 서너명.

때로는 우승, 준우승을 해도 그 이후 행보에 따라 콘테스트 계에서 이름이 묻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엄청난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톱 코디네이터가 되어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는 꿈은 작은 마을의 소녀에게 있어선 과분했던 야망이었다. 어릴 적부터 훈련과 레슨을 받으며 자란 엘리트들도 힘든 일이다. 하물며 무대에 오른다는 것만으로 벌벌 떨 정도로 긴장하는 시골 소녀에게 어울리는 일일까.

히카리는 따뜻한 솜이불을 끌어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10살 짜리 시골 마을 소녀가 여행을 떠난 지 몇개월 만에 리본을 다 모으고 그랜드 페스티벌을 제패한다.

그래, 자신이 그런 전설이 될 리는 없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건 이 평화로운 마을이다.

이 작은 세상에서 포켓몬이랑 오손도손, 평범하게 사는 게 어울린다. 일류 트레이너, 톱 코디네이터는 먼 세상이 일이 되고.. 언젠가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 작고 귀엽지만 별 개성은 없는 아이를 키우며 소박하게 살지도 모른다. 그래, 그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미래이자 현실. 포켓몬과 함께한 여행도 한 때 품었던 포부도 어린 날의 치기이자 한 순간의 소망으로 전락해버리는,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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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벽(dawn)
2015. 1. 31. 01:42

[포켓몬/시로히카] Happy New Year! 글/포켓몬2015. 1. 31. 01:42

2012.12.26


"시로나씨. 왜 그렇게 죽상이에요?"

 

12월 29일. 하얀 눈이 내리는 저녁. 시로나와 히카리는 따뜻한 방에서 추운 창가를 등지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일년의 마지막 날. 히카리가 직접 만든 만찬에, 보기만 해도 달콤한 티라미슈 케이크까지- 평소의 시로나라면 입꼬리가 귀끝에 걸릴 정도로 기뻐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투정 부리는 어린 아이처럼 밥상머리에서 수저만 산만하게 식탁에 두드리고 있었다.

 

"아니, 그치만. 오늘, 거의 다 가 버렸잖아."

 

시로나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말했다. 오후 11시30분. 새해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네요. 정말 한 해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문제야!"

 

히카리의 말에 대뜸 시로나가 소리쳤다. 뜬금없는 시로나의 화제 전환에 익숙해져 있던 탓일까, 히카리는 별로 놀란 기색 없이 멀뚱 시로나를 응시했다. 시로나는 찰랑거리는 금발을 한손으로 넘기며 열변을 토했다.

 

"이거 봐. 또 눈 깜짝할 새에 한 해가 가버렸다고! 정말이지 요새는 세월이 어떻게 가는 지 모르겠다니까? 이렇게 한살, 두살 쉼없이 먹다 보면.."

 

'곧 있으면 서른이겠지'라는 말은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다. 아아, 시로나, 분명 그녀도 한 때는 불타는 10대였다- 히카리를 처음 만날 적만 해도 분명히 십대였다. (좀 애매하긴 하지만..) 하지만 챔피언으로서의 직무 수행에 사랑스러운 소녀와의 연애사업이 더해져서 그런지, 정말이지 시간은 말 그대로 총알처럼 지나가 버렸다. 야속한 세월같으니! 가슴을 쥐어뜯으며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요즘은 왠지 피부도 퍼석한 거 같고... 눈가랑 입가에 주름도 생기는 거 같고.."
"무슨 소리에요, 시로나 씨. 제가 보기엔 몇 년 전이랑 전혀 다를 게 없는 걸요!"
"그럼 내가 몇 년전에는 늙어보였단 얘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고, 시로나는 식탁 위에 엎드렸다. 엉엉, 울어버리고 싶어. 히카리보다 훨씬 연상인데도 이럴 때보면 시로나가 더 어린애 같다. 히카리는 특유의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시로나의 등을 다독였다. 그러자 시로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중얼댔다.

 

"..히카리는 점점 더 예뻐지는데.."
"무슨 말이에요, 대체."

 

그렇게 예쁜 얼굴로 다그쳐봤자 소용이 없어, 히카리. 시로나는 마음속으로 볼멘소리를 했다.

 

그렇다. 확실히 히카리는 해가 갈수록 예뻐지고 있었다. 아니, 물론 원래도 예뻤지만. 요지는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다는 것이다. 그녀는 시로나와 처음 만났던 10살 무렵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랑스러움을 자랑했다. 동그란 눈에 백옥 같은 피부, 길고 빨간 머플러를 휘날리며 자전거를 탈 적에는 길가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더랜다. 원판 불변의 법칙을 넘어선 원판 랭업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까, 히카리는 성장할수록 더욱 아름다워졌던 것이다. 키도 한뼘 두뼘 자라고, 팔다리도 길어졌다. 동글동글했던 얼굴에는 윤곽이 더해져 청순함을 자아냈다. 플러스 청남색 긴 생머리에 다정한 미소까지- 과장이 아니라 정말 신오우에서 손꼽는 미인이 된 것이다. (물론 신오우에서 손꼽는 포켓몬 트레이너이기도 하다) 길거리를 다니면 사인을 부탁 받기도 하고, 공식석상에 나타날 때면 플랜카드를 들고 나타나는 팬 무리들도 있으니, 그야말로 신오우의 아이돌이라 할 수 있겠다.

 

"난..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네. 너에 비하면."
"시로나씨가 진짜로 주름이 자글자글 생긴대도 난 상관없어요. 시로나씨는 시로나씨인걸요."

히카리의 말에 시로나는 벌떡 일어났다.

"저, 정말..?"
"물론이죠."

 

그녀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입에 발린 소리라는 걸 모른다. 특히 자신의 마음에 관해서는 언제나 올곧다. 시로나는 가슴 한켠에서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시로나씨는요, 언제나 저에겐 빛같은 사람이었어요."
"치, 거짓말."
"아니에요! 시로나씨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예뻐서 반짝반짝 눈이 부셨단 말에요."

 

듣는 시로나가 남사스러운 발언이었다. 이 아이는 어쩜 이리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하는 거지...라고 시로나는 생각했다.

 

"시로나씨는 예쁘기도 했지만, 음, 그 뭐랄까.. 분위기가 있었어요."
"분위기?"
"시로나씨만의 분위기요.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맞아요, 시로나씨의 밀로틱처럼. 겉보기엔 정말 유연하고 예쁘지만 배틀 하면 엄청 강하잖아요."
"음.. 뭔지 잘 모르겠어."
"여튼 그런 게 있어요. 저는 한눈에 딱 알아봤어요. 시로나씨가 굉장히 멋진 사람이라는 걸."

 

시로나는 어느새 웃고 있었다- 그녀의 불만스럽던 심정은 열심히 설명하는 히카리의 모습을 보며 누그러진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이런 저런 손짓까지 해가며 자신을 위해 말하는 히카리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래, 그럼 히카리는 날 보고 첫눈에 반한 거구나."
"네?!"
"그렇잖니. 네가 지금 말하는 건."

 

급작스런 말에 히카리는 진땀을 흘렸다. 자신은 그저 기운이 없는 시로나에게 뭔가 좋은 말을 해주려던 것이었는데... 스스로 내뱉은 말을 되짚어보니 어째 그런 구석도 좀 있지 싶다. 아차, 하고 느끼는 순간 히카리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헤헤, 얼굴 빨개졌다."
"아..아니에요.."
"아니긴- 귀여워 죽겠네!"

 

하며 히카리를 힘껏 부둥켜 안았다. 히카리는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시로나의 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 진짜 늙어서 할머니가 되더라도 넌 못 놔줘. 네가 먼저 나한테 반한 거니까, 뒷말하기 없기야."
"무..무슨 소리에요 시로나씨... 그리고 숨 막혀요.."

 

시로나는 힐끔 시계를 다시 보았다. 11시 58분. 티비에서는 아마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겠지. 그럼 난 그 때까지 히카리를 꼭 안고 있어야겠다- 시로나는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졌다.

 

"해피 뉴이어, 히카리짱."
"... 시로나씨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부끄러운 듯 히카리가 말했다. 그래, 한두살 더 먹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귀여운 그녀가 곁에 있는데. 
시로나는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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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벽(da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