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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우마무스메'에 해당되는 글 1

  1. 2021.05.11 [우마무스메/타키온x트레이너] Love Portion

타키온 X 트레이너- Love Portion

 

자아, 모르모트 군.”

 

허스키하고 나긋한 특유의 목소리. 그 호칭으로 불리는 건 꽤나 오랜만이라, 트레이너는 두 눈을 깜빡이며 타키온을 본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정체 물병의 핑크색 물약.

 

근일 심혈을 기울여 제작해 본, 신약이라네. 어때, 친히 실험체가 되어주지 않겠나?”

 

긴 소매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후후하고 낮게 웃는다.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지만, 어쩐지 트레이너는 이 마저도 제법 귀엽다고 여겼다.

 

딱히 상관은 없지만그런데 우마무스메를 위한 약이라면, 인간인 내가 먹으면 실험이 안 되는 거 아니야?”

아아니. 이건 우마무스메를 위한 약물이 아니라네. 으음, 적확한 설명을 하자면, 자네가 먹어야지만 정밀한 분석을 할 수 있겠지.”

 

 타키온은 빙글빙글 삼각 플라스크를 돌린다. 안광이 없는 눈동자가 묘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자네, 그 때 내가 말했던 실험을 기억하는가?”

실험? 무슨 실험?”

 

사실, 타키온이 행한 실험은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이 많아 그녀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트레이너는 알지 못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감정에 대한 실험 말일세.”

아아, 맞아! 그렇지. 그런 실험을 한다고 그 날 잔뜩 데이트를 했었지. 엄청 재밌고 좋았고, 타키온이 귀여웠지.”

“…….”

 

스스럼 없는 트레이너의 표현에, 타키온이 말을 잇지 못한다. 어쩐지 귓볼이 새빨갛다. 분명 그 때만 해도 눈치 없는 대답만 하면서 분위기도 잡을 줄 모르는 녀석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능글능글, 빨간불도 없이 저렇게 훅 들어오곤 한다. 흐음-. 한 번 헛기침을 하고, 타키온이 입을 열었다.

 

기억 난다니 다행이군. 이 신약은 그 실험의 연장이라네. 그러니 인간인 자네가 시음한다면 내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겠나? , 모르모트군.”

 

타키온이 액체를 트레이너 눈앞에 들이민다. 이러니 어쩐지 시야가 온통 핑크빛이다.

 

마셔보게. 큭큭.”

으음….”

 

 몇 년전이었다면, 타키온의 기세에 밀려 단숨에 들이켰겠지만, 지금의 트레이너는 어째….

 

그래서 이게 무슨 약이라고?”

 

 어째 순순하지가 않다.

 

그 때 실험의 연장이라고, 주구장창 몇 분 동안 읊어주지 않았던가? 모르모트군. 자네의 우수함은 어디로 갔나? , 어서….”

그 말은 그러니까, 이걸 마시면 어떤 [감정]이 생긴다는 거지?”

 

 그리고 묘하게 날카로워졌다.

큭큭. 그래. 모르모트 노릇도 수 년을 하다 보니, 척하면 척이로군.”

타키온--. 설명이 부족해. 그래서 어떤 [감정]이 생기는 건데? 설마 타키온을 싫어하게 되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러면 무척이나 곤란하다구.”

곤란하다? 곤란하다라….”

 

 게다가 거절의 의사도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곤란한 건 타키온 쪽이다. 왜 몇 년 전처럼 휘둘려주지 않는 것인지. 긴 소매로 다시 입가를 가린다.

 

당연히 곤란하지! 타키온은 내 최고의 우마무스메니까, 타키온을 미워하게 된다거나 그런 건정말 끔찍한 걸.”

자네 답지 않게 맹랑한 발언이었다만. 애석하게도 그런 효과는 없다네. 애초에, [혐오][증오]의 감정은 그다지 관심 연구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그럼? 그럼 어떤 건데?”

 

 하아. 타키온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어쩐지 불편한 표정으로 설명을 잇는다.

 

기억을 한다면서, 왜 중요한 부분은 두어번 설명하게 만드는 겐가. 그때도 말했다시피, 열정이나 정열에서 발생하는 힘이다. 박수 소리에 무거워진 두 다리가 나아가고, 응원하는 목소리에 또 한 걸음 더 디딜 수 있게 되는 불가사의한 동력원 말일세.”

“……그렇다면, 역시 나를 실험대상으로 쓰는 건 의미가 없겠는걸? 왜냐하면….”

 

 타키온은 침을 꼴딱 삼켰다. 또 무슨 맹랑한 발언을 하려고?

 

왜냐하면 난 이미 타키온에게 홀딱 빠져서 매일매일 정열이 넘치는 상태라, 더이상 상승할 힘이 없는걸?”

“………….”

 

 말을 잃었다. 대체, 대체 이 녀석은….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서 아- 타키온이 보고싶어! 라고 생각해서 엄청 일찍 학원으로 나왔거든. 아침에 빈 교실에서 연습 일정도 순식간에 다 써내려 갔어. 그리고 타키온을 만났는데, 오랜만에 가운을 입고 실험도구를 만지는 걸 보니 또 그게 너무 귀여워서…. 타키온이 부탁한다면 신약은 하루에 수십 번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

그치만 그렇게 먹어도 타키온의 연구에 도움이 안된다면, 나는 트레이너로서 실격이잖아? 타키온은 최고의 우마무스메인데, 트레이너인 내가 도움이 안 된다면 큰일이잖아? 그것만큼 또 속상한 일은 없다구. 저기, 타키온….”

“……….”

타키온, 듣고 있어?”

 

 물론 듣고 있다.

 

얼굴이 왜 그렇게 새빨개졌어? 혹시 열이 나는 건 아니지? 몸이 안 좋아? 연습 일정을 수정할까?”

“……모르모트 군….”

 

재잘재잘 잘도 떠들더니, 타키온의 부름에 강아지처럼 바로 자리에 앉는다.

 

! 타키온.”

자네는정말이지 흥미로운 실험체로군. 우수하다고 해야할지, . 아웃라이어(outlier)라고 해야 할지, 정의 내리기가 어렵군.”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 모르모트군….”

 

 트레이너를 부르는 타키온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리고 점점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다. 약은 아직 테스트도 못해봤는데, 벌써 효과가 나타난 것 같다.

 

신약은 됐네. 자네 성향은 호오(好惡)가 보여 실험체로 쓰려고 했는데…. 무용한 생각이었던 듯 하네.”

~ 내가 타키온을 많이 좋아하긴 하지.”

 

 3자가 들으면 난해하기 그지 없는 타키온의 언사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제멋대로 대답해버리는 트레이너가 싫지는 않다. 그렇지만 굉장히 낯간지럽다.

 

“……실험은 중단일세. 오늘은 자네가 아침부터 심혈을 기울여 짜 온 일정대로 연습을 하도록 하지.”

와아! 고마워.”

자네는 말일세….”

 

타키온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말한다. 어쩐지 체념한 말투다.

 

최악의 모르모트일세.”

그렇구나….”

 

악담을 듣고도, 트레이너는 해실해실 웃음을 흘린다.

 

최악이라는데, 뭐가 그리도 좋은가?”

. 그렇게 감정이 가득 담긴 표현을 타키온에게 들으니, 타키온 실험은 이미 성공한 거 같아서.”

“……하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능청스럽게 타키온의 손을 잡는다. 예상치 못했는지 타키온의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펴진다.

 

“……일일이 나열하면 입만 아프겠네. 일단 가지.”

!”

 

 이렇게 되면 이제 누가 모르모트인 지 알 수가 없다. 오늘 실험은 실패다. 타키온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따뜻한 온기가 스며드는 트레이너의 손을 힘껏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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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벽(da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