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테일/샌즈프리] Unforgiven 글/기타2016. 5. 3. 14:05
*언더테일 스포일러 주의
내가 너를 사랑했던 순간을 잊지 마.
그리고 이건 내가 너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이니까. 이 순간도 잊지 말아줘.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렸다. 이별은 원한 적이 없다. 떠나는 건 의지가 아니다. 마지막 말은, 마지막 발악이다.
샌즈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전부 하등의 상관도 없다는 듯. 헤, 하고 경박한 웃음을 흘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막 순간 따위는 오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는 모든 친구들을 사랑했으므로.
그러나 단 한 존재만이 영원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되풀이 되는 영원을 증오했다.
그리고 아이는 그 존재를 가장 사랑했다.
어쩔 수 없는 마지막이기에, 샌즈의 이름을 부르려 했다.
그러나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므로. 그녀 또한 그럴 수 없었다.
겨우 발길을 돌리려는 아이에게 샌즈가 무어라 말을 뱉는다.
있잖아, kid.
나는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잊은 적이 없어.
아니,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게 맞겠지.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어.
우리가 만나고 헤어졌던 그 모든 순간, 넌 진심이었니?
방귀 쿠션을 대고 악수를 했던 우스꽝스러웠던 첫 만남. 그릴비의 바삭한 감자튀김과 달콤한 케첩. 망원경 속의 새까만 하늘. 함께 바라본 첫 석양. 아이는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파피루스의 등 뒤로 풀럭거리던 새빨간 머플러. 어딘가 고장나버린 퍼즐. 새파란 불빛과 눈앞을 뒤덮는 희뿌연 먼지. 단 한 번도 거짓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당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닥을 알 수 없는 구멍처럼, 새까맣게 비어있던 샌즈의 눈동자에 푸른빛이 설핏 빛났다 사라졌다.
잘 가. 다신 돌아오지 말고.
아니, ‘되돌리진 말고’가 맞으려나?
아이는 겁을 잔뜩 집어 먹은 병아리처럼 침을 꼴깍 삼켰다. 눈물도 고백도 소용이 없다. 그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쿠션 소리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나온 딸꾹질. 케첩을 묻혀가며 감자튀김을 오물오물 씹던 작은 입술. 새까만 하늘을 들여다보는 눈동자. 홀로 펄럭이는 새빨간 머플러. 주인을 잃은 퍼즐. 햇빛이 비치지 않는 복도와 먼지가 쌓인 어깨. 그는 고통 속에서 자비를 피워내는 작고 가여운 존재를 사랑하였다. 이내 재로 뒤덮인 작은 두 손을 증오하였다. 그런 아름답고 끔직한 나날이, 석양이, 몇 번 떠오르고 또 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네가 그 자리를 맴맴 돌았다는 것만 안다. 아이를 사랑하고, 버림받고, 그래서 사랑을 게워내고. 그저 그렇게 자신이 맴맴 돌았다는 것만 안다.
샌즈는 먼저 발길을 돌렸다. 그건 마지막 경고였다. 전부 마지막, 마지막이 되기만을 빌면서.
아이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갈 지는 모른다. 다만 어디든 그녀를 아는 이가 없는 곳으로. 당신이 알지 못하는 어딘가로 떠나기로 했다. 그것이 사랑하는 이의 소원이라면. 자비도 행함도 없는 세상으로 영영 사라져도 괜찮다.
이 순간도 잊지 말아줘.
잊을 리 없다. 샌즈는 경련이 일 듯 멈춰 돌아봤다. 아이는 없었다.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잡탕처럼 뒤범벅 된 상처와 희망이 현재를 베일처럼 가릴 뿐이었다. 아이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그가 원했기 때문에. 샌즈는 다시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걷기 시작했다. 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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