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W기반 회지 웹공개] 불꽃춤(Fiery Dance)- 6. 각성 글/포켓몬 회지 웹공개-불꽃춤(2015)2018. 8. 2. 14:56
6. 각성
꿈을 꾸었다. 세실리아와 손을 잡고 숲을 거닐었다. 그녀의 손은 햇살을 머금은 솜털처럼 보드랍고 따사로웠다. 전에 없던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나를 이끌었다. 세실리아의 하얀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 커다란 불카모스가 춤을 추었다. 넘실넘실 바다를 유영하듯, 하늘하늘 구름 속을 헤치듯 춤을 추었다. 그 때마다 청명한 홍색 불꽃이 불카모스의 주위에서 반짝거렸다. 나와 세실리아는 웃으며 함께 불꽃춤을 보았다.
아아, 그건 분명 꿈이었다. 세실리아는 내 손을 잡아준 적 없고, 나를 보며 웃어준 적도 없다. 우리는 분명 둘 뿐인 친구였음에도. 나는 세실리아의 손을 잡아준 적이 없고, 세실리아를 보며 웃어준 적도 없다. 그녀는 나의 하나 뿐인 친구였음에도.
그렇게 스스로 깨달아버린 나는, 부서진 꿈속에서 헐떡이며 깨어났다.
소녀가 성으로 오고 있다고 한다.
결국 결전의 날이 온 것이다. 칠현인은 소녀가 사천왕을 이기고 챔피언의 방까지 올 수 없을 거라며 코웃음을 쳤었다. 자만심이 화를 부른 셈이다. N님이 아무리 우겼어도, 개치스님의 선에서 처리를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철두철미한 개치스님마저도 소녀를 왕을 위한 시나리오의 일개 조연 정도로만 여겼다. 하나 지방의 마지막 희망으로 보이던 소녀가 N님 앞에서 처참히 무너진다, 그런 결말로 이야기를 꾸며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때론 야망에 눈이 뒤집혀 현실을 바로 파악하지 못한다.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확실하게 소멸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불씨가 숲 전체를 활활 태워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소녀와 세실리아의 모습을 번갈아 떠올리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지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휘청휘청 복도를 걸었다. 방에 가서 몸이라도 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미아야….”
다정하고 온화한 음색. 로트님이었다.
“어디 아픈 게냐?”
“아닙니다. 그냥 좀 어지러워서….”
나는 그를 바로 보지 못하고 눈을 피했다. 소녀와 N님의 이야기가 끝난다면, 플라즈마단도 어떤 식이든 결말을 맞게 될 것이다. 그 미래에도 내가 과연 로트님과 함께일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비록 그가 주름진 눈으로 가년스런 딸을 달래듯 나를 보아도….
“저번부터 그렇고, 몸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걱정 되는 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N님은 잘 해내실 테니까.”
“네에….”
“어떻게 되든 말이다…. 네가 있으면 잘 될 것 같구나. 여태껏 그래왔듯이 말이야….”
그리 말하며 그는 내 손을 부여잡았다. 잔잔한 온기가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했다. 대신 나도 모르게 낯선 단어가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잘 된다는 게 어떤 거죠?”
그것은 얼어붙은 세상처럼 날이 선 차가움.
“포켓몬의 해방이 잘 되는 일인 건가요?”
“미아야. 무슨 말을….”
“플라즈마단이 바라는 선의 세계라는 것이, 서로를 아끼는 사람들과 포켓몬을 떼어놓는 건가요? 그렇게 해놓고, 이 성을 지을 때처럼 계속 포켓몬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게 올바른 미래인 건가요?”
로트님의 온화한 얼굴이 경직되어 간다.
“정말 레지람이 N님을 영웅이라서 선택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레지람은 한 번 하나를 멸망시켰는데 두 번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잖아요. 어쩌면 그 하얀 용은 파멸의 파트너로 N을 선택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N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부르지 않기로 했다. 단 한 번도 N을 세계를 구원할 선지자라고 여긴 적이 없다.
“N의 마음에 평화가 없는데 어떻게 그가 영웅이 될 수 있죠? N의 마음이 해방되지 않았는데 그가 어찌 해방을 논할 수 있죠? 전부 거짓투성이야, 전부.”
힘겹게 로트님의 손을 뿌리쳤다. 로트님은 경악했다.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그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품에서 자란 것이 무리를 혐오하고 배척하는 돌연변이 새끼라는 것을. 개치스의 얄팍한 술수도 파악하지 못하는 그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네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그의 주름이 한층 깊어지고, 시선은 어지럽게 흩어진다. 나는 내가 저지른 일에 후회는 없었다. 로트님을 실망시켰어도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은 예전보다 더 명확한 박자로 울리고 있었다.
결국 로트님은 나에게 당분간 근신 처분을 내렸다. 나는 독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소녀와 N의 이야기가 끝난다면, 플라즈마단도 어떤 식이든 끝을 맺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세실리아도 어떤 식으로든 결말을 맞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예전의 나인채로 머물 수 없었다. 해방도 꿈도 이상도 그 무엇도 없는 이곳에 모든 것을 내맡긴 채로 머물 수 없었다. 쿵쿵, 심장이 세찬 말발굽 소리처럼 전신을 울렸다.
소녀가 성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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