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시로히카] Happy New Year! 글/포켓몬2015. 1. 31. 01:42
2012.12.26
"시로나씨. 왜 그렇게 죽상이에요?"
12월 29일. 하얀 눈이 내리는 저녁. 시로나와 히카리는 따뜻한 방에서 추운 창가를 등지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일년의 마지막 날. 히카리가 직접 만든 만찬에, 보기만 해도 달콤한 티라미슈 케이크까지- 평소의 시로나라면 입꼬리가 귀끝에 걸릴 정도로 기뻐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투정 부리는 어린 아이처럼 밥상머리에서 수저만 산만하게 식탁에 두드리고 있었다.
"아니, 그치만. 오늘, 거의 다 가 버렸잖아."
시로나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말했다. 오후 11시30분. 새해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네요. 정말 한 해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문제야!"
히카리의 말에 대뜸 시로나가 소리쳤다. 뜬금없는 시로나의 화제 전환에 익숙해져 있던 탓일까, 히카리는 별로 놀란 기색 없이 멀뚱 시로나를 응시했다. 시로나는 찰랑거리는 금발을 한손으로 넘기며 열변을 토했다.
"이거 봐. 또 눈 깜짝할 새에 한 해가 가버렸다고! 정말이지 요새는 세월이 어떻게 가는 지 모르겠다니까? 이렇게 한살, 두살 쉼없이 먹다 보면.."
'곧 있으면 서른이겠지'라는 말은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다. 아아, 시로나, 분명 그녀도 한 때는 불타는 10대였다- 히카리를 처음 만날 적만 해도 분명히 십대였다. (좀 애매하긴 하지만..) 하지만 챔피언으로서의 직무 수행에 사랑스러운 소녀와의 연애사업이 더해져서 그런지, 정말이지 시간은 말 그대로 총알처럼 지나가 버렸다. 야속한 세월같으니! 가슴을 쥐어뜯으며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요즘은 왠지 피부도 퍼석한 거 같고... 눈가랑 입가에 주름도 생기는 거 같고.."
"무슨 소리에요, 시로나 씨. 제가 보기엔 몇 년 전이랑 전혀 다를 게 없는 걸요!"
"그럼 내가 몇 년전에는 늙어보였단 얘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고, 시로나는 식탁 위에 엎드렸다. 엉엉, 울어버리고 싶어. 히카리보다 훨씬 연상인데도 이럴 때보면 시로나가 더 어린애 같다. 히카리는 특유의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시로나의 등을 다독였다. 그러자 시로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중얼댔다.
"..히카리는 점점 더 예뻐지는데.."
"무슨 말이에요, 대체."
그렇게 예쁜 얼굴로 다그쳐봤자 소용이 없어, 히카리. 시로나는 마음속으로 볼멘소리를 했다.
그렇다. 확실히 히카리는 해가 갈수록 예뻐지고 있었다. 아니, 물론 원래도 예뻤지만. 요지는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다는 것이다. 그녀는 시로나와 처음 만났던 10살 무렵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랑스러움을 자랑했다. 동그란 눈에 백옥 같은 피부, 길고 빨간 머플러를 휘날리며 자전거를 탈 적에는 길가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더랜다. 원판 불변의 법칙을 넘어선 원판 랭업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까, 히카리는 성장할수록 더욱 아름다워졌던 것이다. 키도 한뼘 두뼘 자라고, 팔다리도 길어졌다. 동글동글했던 얼굴에는 윤곽이 더해져 청순함을 자아냈다. 플러스 청남색 긴 생머리에 다정한 미소까지- 과장이 아니라 정말 신오우에서 손꼽는 미인이 된 것이다. (물론 신오우에서 손꼽는 포켓몬 트레이너이기도 하다) 길거리를 다니면 사인을 부탁 받기도 하고, 공식석상에 나타날 때면 플랜카드를 들고 나타나는 팬 무리들도 있으니, 그야말로 신오우의 아이돌이라 할 수 있겠다.
"난..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네. 너에 비하면."
"시로나씨가 진짜로 주름이 자글자글 생긴대도 난 상관없어요. 시로나씨는 시로나씨인걸요."
히카리의 말에 시로나는 벌떡 일어났다.
"저, 정말..?"
"물론이죠."
그녀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입에 발린 소리라는 걸 모른다. 특히 자신의 마음에 관해서는 언제나 올곧다. 시로나는 가슴 한켠에서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시로나씨는요, 언제나 저에겐 빛같은 사람이었어요."
"치, 거짓말."
"아니에요! 시로나씨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예뻐서 반짝반짝 눈이 부셨단 말에요."
듣는 시로나가 남사스러운 발언이었다. 이 아이는 어쩜 이리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하는 거지...라고 시로나는 생각했다.
"시로나씨는 예쁘기도 했지만, 음, 그 뭐랄까.. 분위기가 있었어요."
"분위기?"
"시로나씨만의 분위기요.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맞아요, 시로나씨의 밀로틱처럼. 겉보기엔 정말 유연하고 예쁘지만 배틀 하면 엄청 강하잖아요."
"음.. 뭔지 잘 모르겠어."
"여튼 그런 게 있어요. 저는 한눈에 딱 알아봤어요. 시로나씨가 굉장히 멋진 사람이라는 걸."
시로나는 어느새 웃고 있었다- 그녀의 불만스럽던 심정은 열심히 설명하는 히카리의 모습을 보며 누그러진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이런 저런 손짓까지 해가며 자신을 위해 말하는 히카리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래, 그럼 히카리는 날 보고 첫눈에 반한 거구나."
"네?!"
"그렇잖니. 네가 지금 말하는 건."
급작스런 말에 히카리는 진땀을 흘렸다. 자신은 그저 기운이 없는 시로나에게 뭔가 좋은 말을 해주려던 것이었는데... 스스로 내뱉은 말을 되짚어보니 어째 그런 구석도 좀 있지 싶다. 아차, 하고 느끼는 순간 히카리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헤헤, 얼굴 빨개졌다."
"아..아니에요.."
"아니긴- 귀여워 죽겠네!"
하며 히카리를 힘껏 부둥켜 안았다. 히카리는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시로나의 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 진짜 늙어서 할머니가 되더라도 넌 못 놔줘. 네가 먼저 나한테 반한 거니까, 뒷말하기 없기야."
"무..무슨 소리에요 시로나씨... 그리고 숨 막혀요.."
시로나는 힐끔 시계를 다시 보았다. 11시 58분. 티비에서는 아마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겠지. 그럼 난 그 때까지 히카리를 꼭 안고 있어야겠다- 시로나는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졌다.
"해피 뉴이어, 히카리짱."
"... 시로나씨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부끄러운 듯 히카리가 말했다. 그래, 한두살 더 먹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귀여운 그녀가 곁에 있는데.
시로나는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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