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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31. 10:47

[포켓몬/휴우메이] 무제 글/포켓몬2016. 1. 31. 10:47

정확히는 휴우->메이.



*******

 

나 그 사람에게 새하얀 방을 선물하고 싶어.”

 

느닷없는 이야기에 휴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게 무슨 소리야?”

 

퉁명스런 대답에도 메이는 활짝 웃는다.

 

그 사람의 방에 가봤거든. 그래서.” “그래서?” 취조하듯 휴우가 되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처음부터 다시 꾸밀 수 있는, 하얀 방을 주고 싶어.”

 

휴우는 시를 읊듯 뜬구름 같은 소리만 하게 된 메이가 싫었다. 개나리색 바지 끝을 살짝 붙잡고 손을 떨며 얘기하는, 메이가 싫었다. ‘그 사람이라고 칭하는 N이라는 작자를 만나고 나서- 그의 이웃친구는 변했다. 그 전에는 한 톨의 망설임도 모르는 아이였다. 무엇을 입에 담든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허리는 곧게 피고, 주저함이 없었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왜 그가 가장 아끼던 모습은 사라지고 낯선 표현만 내뱉는 걸까. 꼭 꿈속에서 말을 거는 것처럼.

 

예전에 그 사람이 지냈던 방- 보자마자, 뭐랄지. 안타까움이 턱 밑까지 차오르더라. 제자리에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어. 우리가 흔하게,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물의 제자리 말이야. 그 사람은 줄곧 세계를 그렇게 보아왔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가슴이 답답해서. 엷게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니까 괜스레 더 울컥해버린 거야.”

 

왜 나한테 그렇게 세세하게 설명하는 거야? 휴우는 말을 자르고 묻고 싶었다. 허나 은하수처럼 오색영롱한 눈동자를 보자니 차마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면 늘 그런 표정이었다. 구름 너머 사는 요정님이라도 만났는지 색색의 설렘이 묻은 얼굴. 휴우가 제일 싫어하는, 메이의 얼굴.

 

그래서 생각했어. 그 사람한테 하얀 방을 선물해주면 좋겠다-라고.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알려주는 거야. 하늘은 천장, 풀밭은 바닥에. 창가에 원목 책상을 놓고 커피를 마실 수도 있고. 한 구석에는 말끔하게 시트를 씌워놓은 알맞은 크기의 침대를 두고. 옷걸이에 가지런하게 옷가지를 정리하기도 하고. 낮은 의자 위에 동그란 방석을 올리고. 때론 앉았다가, 일어났다. 창을 열어 환기도 시키고, 주말에는 먼지도 털고. -모든 사이클이 평범하게, 제자리에 있는 곳. 그런 방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

 

- 휴우는 어떻게 생각해?“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물어온다. 휴우는 한 손으로 입을 감싸고 간신히 답했다.

 

네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난 그 N이라는 사람 알지도 못하니까.”

 

무뚝뚝하네. 정말, 내가 원하는 조언은 그런 게 아니라니까. 같은 남자로서 여자애한테 그런 선물을 받으면, 어떨까하고 물어보는 거야.”

 

이런 메이는 유독 위화감이 든다. 다른 사람을 향한 온전한 희열과 기대로 가득 찬 메이. 휴우는 저도 모르게 목이 멨다. 왜 이런 하찮은 일에 절망해야 하는 걸까. 눈이 따갑고 시렸다. 메이의 사소한 언행에 반응하는 몸뚱이가 진절머리 났다.

 

난 모르니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 두 눈을 차마 뜨지 못하고 말했다.

 

뭐야, 왜 그런 심한 이야기를 해? 나는 휴우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어차피 두 사람의 일인데 내 의견이 뭐가 중요해? 네가 알아서 해. 넌 언제나 네가 알아서 잘 해왔잖아.”

 

그게 무엇이든. 언제나 홀로 잘 해내왔잖아. 내가 없이도.

 

메이의 분홍색 운동화가 주춤 뒤로 물러선다.

 

오늘 휴우는 유독 쌀쌀맞네.”

 

마치 언제나의 휴우는 다정했다는 것처럼 들렸다.

 

뭐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어?”

 

정말 얼간이 같은 질문이다. 휴우는 간신히 눈을 떴다. 시야가 다시 메이로 가득 찬다.

 

네가 그러고 다니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것뿐이야. 어디 나사 빠진 것처럼, 헐렁헐렁. 정신도 못 차리고 바보처럼-.”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심보가 못되진 거네. 휴우. 지금 말은 좀 심했어.”

 

심한 건 내가 아니라 너겠지. 휴우는 영원히 꺼내지도 못할 말을 꿀꺽 삼켰다.

 

됐어. 나 이제 휴우한테 이런 거 안 물어볼 거니까. 알아서, 잘 해볼게. 휴우도 알아서 잘 하든 말든-. 알아서 해.”

 

하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 돌아선다. 터벅터벅 박자에 안 맞게 걸어가는 폼이 제법 화가 난 모양이다.

 

젠장,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이상하다. 분명 하나만 봐도 열을 알았는데. 휴우와 메이는. 성격이나 외모는 정반대였어도 누구보다 가까웠다. 친구인지, 동료인지, 그저 이웃사촌인지는 그 관계를 명명하기 어려웠지만. 걷는 모양새만 봐도 서로의 기분을 알아맞힐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모르겠다. 휴우는 메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처음 보는 표정, 몸짓, 말투. 온갖 낯선 징후들을 흘려대니 정답이 뭐라고 찍을 수도 없었다. 그냥 메이가 N이라는 남자를 만난 이후로 바보 멍청이가 되어버린 거라고. 뭐 하나 똑바로 설명도 못하는 얼간이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게 편했다.

 길 위의 돌멩이를 있는 힘껏 짓밟는다. 하얀 방을 주고 싶다고. 메이는 휴우에게 생일마다 꼬박꼬박 선물을 주곤 했다. 그렇지만. 너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 라며 볼을 붉히며 말한 적은 없었다. 바보 같은 메이. 하얀 방을 주고 싶다느니, 시답지 않은 일에 열을 내고 다니고. 휴우는 속으로 툴툴거렸다. 그래도 속은 시원해지지 않는다. 휴우의 방은 그렇게 자주 와봤으면서도, 한마디라도 덜어준 적 없으면서.

 

 

어쩌면 정말 멍청해진 건 휴우인지도 몰랐다. 메이가 토라져 돌아선 그 순간부터, 후회하고 있었으니. 후회할 거라면 왜 뾰족한 말들만 골라서 내뱉은 걸까. 휴우는 삐죽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내일 아침에 사과하러 가야겠다. 젠장. 자조와 짜증이 뒤섞여 속에서 펄펄 들끓었다. 그러면서도 내일 메이가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휴우가 알던 익숙한 메이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저도 모르게 그런 바람이, 먹먹한 가슴에 담겼다.

 



(참고) 휴우메이()를 위한 소재키워드 절망 하얀 방 영원히


(bw2를 플레이한 지 오래되어서.. 메이가 N의 방에 갈 수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긴 하는데 ㅠ 설정붕괴여도 그냥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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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벽(da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