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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0. 15:26

[포켓몬/아카히카(태홍빛나)] Unreachable 글/포켓몬2016. 11. 20. 15:26

아카히카() 위한 소재키워드 : 달콤한 와인 한잔 / 나른한 오후 / 허무함

 

[포켓몬/아카히카] Unreachable


스물일곱. 히카리는 그의 나이가 되면 이해할 있을 알았다. 서른에 가까운 한창 때의 나이. 제법 나름의 가치관과 사고가 뚜렷하게 자리 잡았을 나이. 나이가 되면 이해할 같았다.

 

어른이 되면 같았는데. 전혀, 수가 없네.”

 

새빨간 레드와인을 모금 축이며 히카리가 중얼거렸다. 열살 때건 스물 일곱일 때건 여전히 없는 사람이다. 아카기라는 이름의, 과거 신오우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긴가단의 보스 말이다. 열살 , 신오우 리그를 제패하고 긴가단을 물리친 어마어마한 전적을 가진 히카리다. 그로부터 벌써 17년이나 흘렀다. 신오우를 구한 작은 영웅도 어느새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와인을 마시고 시가를 피워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여성이 되었다. 그녀의 외모만이 어린 시절 정갈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을 따름이다. 다만, 속은 조금 찌들은 어른이 관계로. 그녀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며 홀로 세상을 한탄하기도 했다.

 

이제 나도 당신 나이인데 말이야. 도무지- 아무 것도 이해가 안돼. 대체 그런 걸까?”

 

나른한 오후였다. 햇살이 네모난 사이로 쏟아지는 밝은 . 나옹마는 그르릉 소리를 내며 따뜻한 햇살 밑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와 대비되는 광경으로, 창가의 테이블에서 트레이너는 한껏 술에 취해 혼자서 주저리주저리 내뱉고 있었다.

 

도대체가 말이지. 감정이 없는 세계를 만들겠다니 뭐라니 그런 해괴망측한 소리나 잔뜩 늘어놓고. 웃긴 그런 소리에 혹해서 긴가단 애들이 모여 들었단 말이지? , 그거야 당신이 말재간이 워낙 좋았고 사람을 끄는 능력도 있었으니 그렇다 쳐도. 대체 그게 무슨 소리란 말야? 세상에서 감정이 없어져야 하는 건데, 대체 그랬는데?”

 

와인을 벌써 병이나 비웠다. 사실 히카리는 술이 약했다. 달콤한 와인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지는데 오늘은 유독 무리를 했지 싶다. 희멀건 대낮부터 술을 들이키는 이유는, 그래, 오늘은 있었다. 잔뜩 있었다. 오늘은 사람의 기일이었다.

 

내가 기껏 막았는데 말이지. 정말 열심히 했는데 말이지. 고작 열살엄청 어렸는데도 정말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그렇지? 그래서 신오우도 구하고 긴가단은 해체되고 같았는데 말이지…”

 

오늘따라 술맛이 좋지 않았다. 술이 약한데도 와인을 즐겨하는 특유의 달콤쌉싸름한 풍미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따라 유독 텁텁하고 쓰기만 했다. 억지로 먹는 기름을 속에 들이붓는 느낌마저 들었다. 오늘이 사람의 기일인 탓일까? 자신 말고 아무도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는데. 익숙해진 허무함은 가슴 속에 켜켜이 쌓여만 갔다.

 

당신이 반전 세계로 가버렸을 때만 해도, 나한테 기라티나가 있으니까- 언제든 다시 데려올 있다고 생각해서그래서 바로 찾으러 건데. 내가 그랬을까, 어려서 상황 판단이 됐던 걸까? 후후, 나는 어릴 때부터 제법 똑부러진 아이었는데. 정말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네. 마지막 한마디를 입술 사이로 흘려보내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어라, 눈물은 이제 마른 아니었나? 아직도 울어줄 사람이 있다니 받았네, 아카기.

 

아직도 주장은 이거야. 나는 잘못한 없어, 이상한 당신이야. 원하는 세계가 있었잖아. 그런데 그렇게 해버린 거야? 마음 같은 필요 없다고 당신이잖아. 그런데 외롭기라도 했던 거야? 쓸쓸하고, 허무하고, 고독했던 거야? 대체 , 대체 언제부터.”

 

어차피 지난 일이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히카리는 이지적인 아카기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적이지만, 누군가를 손쉽게 설득하고 통솔하며 스스로의 논리에 한치의 오점도 남기지 않는 어른에게 자석처럼 끌렸더랬다. 그래서 때로는 신오우를 누비며 그를 찾아다닐 때에도, 그를 막기 위해서인지 혹은 만나기 위해서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열살인 히카리에게 아카기는 그릇되었지만 너무나 높고 아름다운, 모순된 이상이었다.

 그토록 동경했음에도, 히카리는 아카기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의 출생지, 나이, 그리고 긴가단 보스로서의 전적 정도를 외우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의 사상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는 당연히 모른다. 올곧음과 따뜻한 사랑 속에서 자라난 히카리에게 아카기의 비뚤어지고 복잡한 사고방식은 어렵기 그지 없었다. 누군가에게서 사랑을 받고, 누군가를 사랑할 있다는 자신감이 히카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는데. 아카기는 다름 아닌 그런 감정 자체를 부인했다. 부인하는 것을 넘어, 영영 지워버리려 했다. 히카리는 그런 비틀어진 판단이 어른들의 소유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긴가단은 보스도 간부도 조무래기들도 전부 어른들이었으니까. 어른이 되면 그런 이야기가 어쩌면 이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시 그녀는 고작 열살. 너무 어려서, 단지 바르고 틀린 것만 구분할 저에 깔린 많고 닳은 사연과 적의들을 읽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치부했었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 당신을 이해할 있겠지.

 스무살이 되던 , 히카리는 적잖이 실망했다. 단지 나이가 스물이 넘었다고 해서 아카기와 같은 어른이 되는 아니었다. 히카리는 여전히 여리고, 감정적이었으며, 열살 때와 똑같이 아카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그와 같은 나이가 된다면 어떨까? 7년을 기다려야했다.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시간은 눈치채지 못한 사이 훌쩍 지나가버리곤 한다. 마침내 올해, 히카리는 커다란 실망감에 휩싸였다. 여전히 당신을 모르겠다. 여전히, 아마도 평생. 당신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니 켜켜이 쌓인 허무함이 수백 개의 돌덩이가 되어 어깨를 마구 짓눌렀다.

 

내가 당신 나이가 되어서 알게 , 그냥 하나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야. 당신이 그랬던 , 어른이어서도 아니고 똑똑해서도 아냐.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거야. 당신은. 열살 때부터 나랑 만났을 때까지 줄곧 똑같은 사람이었던 거야. ”

 

그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사람. 그런데 죽도록 알고 싶은 사람.

 

히카리는 아카기를 잃었던 밤을 기억한다.

 어느 , 반전세계에 가봤더니 그가 보이질 않았다. 새까만 밤과 촘촘한 별들 사이를 마구 뒤지며 그를 찾았다. 그리고 무거운 벽과 돌들 사이에서 처음부터 생명이 없었던 것처럼, 차분하게 숨을 죽이고 누워있는 그를 발견했다. 히카리가 때의 일이다. 아카기가 스물 일곱일 적의 일이다. 히카리는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마구 마구 눈물을 쏟았다. 때문이야? 때문인거야? 앳된 목소리가 설움과 죄책감에 복받쳐 제대로 흘러나오지도 못했다. 혹한 속에 있기라도 하듯, 작은 손을 덜덜 떨며 커다란 아카기의 손을 붙잡았다. 여전히 싸늘한 얼굴의 아카기는 언제나처럼, 답이 없었다. 그게 싫었다. 전부 싫었다. 나쁜 아이가 같았다. 아니, 나쁜 아이가 것보다 되돌릴 없다는 더욱 싫었다. 히카리의 가슴에 새까만 구멍 하나가 뚫렸다. 십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채워지지 않고 바람만 숭숭 지나다니는 구멍이었다. 어른이 되면 구멍을 채워줄 다른 이를 만날 있을 알았다. 하지만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구멍은 같은 구멍인 채로 17년이 지났다. 몸만 자랐지 마음은 그대로였다. 구멍이 뚫린 그대로. 숨이 없는 그의 손을 힘껏 붙잡은 채로.

 

마지막 잔을 비우자 외려 정신이 또렷해졌다. 히카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밖을 보았다. 찬란한 햇살이 비추는 한가한 오후이다. 아카기는 이런 알았을까? 아카기도 따스한 빛이 내리쬐는 창가에 앉으면 마음이 아늑해 지곤 했을까?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럴 리가, 방도가 있나.

 

아아, 내가. 당신을 조금 일찍 만났다면. 시간이…”

 

시간이.

 

시간이 겹쳐졌다면. 우리의 시간이 …. 조금 겹쳐졌다면.”

 

그랬다면, 아니 그래도.

 

그래도 달라지지 않았다면. 나는 ,”

 

나는 당신을 만났던 걸까?

 

17번째 그의 기일에 홀로 울며 술을 마셨다. 여전히 무엇도 이해하지 못한 . 그저 자책만 넘쳐났다. 18번째에도, 19번째에도, 계속 그럴 거라면. 나는 당신을 만났던 걸까? 히카리는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17 때처럼, 열살의 어린아이처럼. 울어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알면서도. 그렇게 눈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사람도, 세상도,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무엇도 변하지 않는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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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벽(dawn)